원전 위기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원전 보유는 물론 원전기술 측면에서도 선진국 반열에 섰고 특히 국토
가 작아 중대사고가 발생한다면 국가위기에 처할 우려가 크다는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적정 비율로 원전을 유지함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원자력 안전에 대
해 다른 나라보다 앞선 정책과 체계를 갖춰야 한다.

원전 사고가 국가위기’ 초래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집단 중대사고(핵연료 용융이 일어나는 사고)로‘원전발 국가위기’가 국제적 이슈로 급부상했다. 원전 중대사고는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방사능 대량 방출로 이어질 경우 한 국가의 환경과 보건 문제는 물론 경제, 사회, 정치영역까지 심각한 교란을 초래할 수 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일으킨 원전은 우크라이나에 있었지만 사고 여파의 타격이 가장 큰 나라는 벨라루스다. 벨라루스는 국토가 좁아 국토의 절반가량이 상당 수준으로 방사능에 오염됐는데, 오염지역에서 생산된 곡물이나 목재의 판로가 막히자 당시 1차산업에 의존하던 국가경제가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에 반해 국토의 일부비율만 오염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충격을 흡수할 여지가 충분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는 주된 풍향이 동쪽을 향함으로써 방출된 대부분방사능이 태평양에 침적했다. 짧은 시간 내륙을 향했던 바람 때문에 후쿠시마현 서북지역과 이바라키현 일부가 상당한 수준으로 오염됐지만, 만약 바람이 주로 내륙으로 향했더라면 피해의 심각성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확대됐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원전을 주요 에너지원의 하나로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 분명한 타산지석이다. 국토가 좁기 때문에 중대사고가 발생했을 때 바람이 내륙으로 향한다면 현실적으로 전 국토가‘ 피해지역’이 될 수도 있다.

피해지역이 된다는 것이 많은 인명이 손상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한 체르노빌에서도 방사선 피폭에 의한 실질 인명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에서는 방사선 피폭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은 방사능에 대한 일반 대중의 공포심이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스칸디나비아 국가나 서독, 오스트리아등 서빙국가 사람들은 공포심 때문에 과민하게 반응해 부당한 피해를 자초했다. 1987년 브라질 고이아니아 방사선 원전사고 당시 브라질에서 사람들은 고이아니아라는 지역과 시민에 ‘낙인’을 찍고 기피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후쿠시마사태 후 방사능 오염 여부와 무관하게 일본산 식품은 우리 시장에서 배척됐다.

지구를 돌아 미미한 방사능 때문에 거의 한 달 동안 많은 사람들이 조바심을 냈고 소금이나 다
시마가 품절되는 웃지 못할 현상들이 나타났다. 문제는 이러한 과민반응이 우리 국민만의 성향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러한 이해와 반응 기반에 우리 국토가 방사능에 오염되면 세계 모든 사람들은‘ Korea=Radioactivity(한국=방사능)’이라는 낙인을 찍을 것이다. 분명한 국가위기 국면이다.

‘희귀사상’의 위험과 사회반응

위와 같은 국가위기는 ‘방사능 대량방출로 이어지는 원전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리고 ‘바람이
내륙으로 향한다면’ 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고리나 영광, 월성 등 원전 부지에서 바람이 내륙을 향할 확률은 충분히 높다. 즉 있음직한 사상이다.
이에 반해 원전에서 방사능 대량방출을 초래하는 중대사고가 발생하는 일은 있음직한 것이 아
니라 가능성(possible)만 있는 사상이다. 즉 확률이 매우 낮은 사상을 기정사실로 가정하는 것이다. 확률이 매우 낮은 사상을 기정사실로 간주하면 위험을 부당하게 확대하는 것이다. 확률론적안전성분석 결과는 현대 원전에서 방사능 대량방출을 동반하는 중대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대략 10만 호기-연 당 1회, 즉 연간 호기 당 10-5 정도다.

체르노빌 사고에 준하는 원전 사고를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가 보유한 50기의 원전이 50년간 가동된다고 가정하면 원전 사고로 인한 국민의 개인 당 연간 사망위험은 2.5×10-7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연간 교통사고 사망위험(약 1.2×10-4)에 비해 무시할 정도로 작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함정이 있을 수도 있다. 중대사고 확률이 10만 년
에 1회 정도(세계 원전수를 500기로 하면 200년에 1회 꼴)로 말하는 원전에서 20년이 멀다하고중대사고가 발생했다. ‘10만년 당 1회’라고 평가한 낮은 사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판단능력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확률분포의 ‘꼬리’라 불리는 이와 같은 희귀 사상에서 작은 오차도 최종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즉，사건의 확률이 낮을 때는 확률론적 안전성분석 결과의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위험 계산이 맞더라도 평가된 위험과 일반 대중이 느끼는 위험에는 차이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는 빈도가 1년에 100회이고 사고마다 평균 1명이 사망하는 위험과 사고 빈도는 100년에 1회이지만 발생하면 1만 명이 사망하는 위험은 수학적으로는 같은 크기의 위험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자보다는 후자를 우려하며 자신이 그 위험에 처할 때 반발도 심하다. 도로에서 매일 수십 명이 사망하지만 개의치 않는 한편으로, 드물지만 한 번 발생하면 ‘참사’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 원전사고는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위험을 더 혐오하는 성향이 있다. 매년 수백 명이 사망하는 독감에는 신경을 쓰지 않지만‘ 사스’나‘ 광우병’에는 놀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전 사고를 무조건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참사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위험을 단순히 인명
뿐 아니라 경제·사회적 여파까지 확장하면 총제적 국가위기로 발전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때문에 우리 여건에서 원자력 발전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면(원자력 위험을 다시 보는 입장에서 계속해서 원자력발전이 우리에게 불가피한 선택인지 재검토는 필요하겠지만 대안이 매우 제한적인 여건 때문에 여전히 ‘불가피한 선택’ 쪽에 있을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심각한 원전 사고를 예방해야 하고, 사고가 발생한 때를 대비해 피해완화 대책을 확고히 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원전 사고는 예측 불가능한‘ 검은 백조’

원전은 왜‘ 안심’해도 좋을 만큼 안전할 수 없는 것인가？ 지금의 원자로는 핵분열 에너지를 이
용하므로 운전 이력과 함께 핵연료 내에 방사능이 누적된다. ‘방사능’이란 에너지를 내는 능력의의미가 있다. 가동 중인 원전에서 어떤 이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원자로를 정지시키는 것은 보장된다고 봐도 좋다. 문제는 원자로가 정지해 핵분열 에너지 방출이 중지되더라도 핵연료 내의 방사능이 계속 에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이 열원을‘ 잔류열’이라고 부른다.

원자로 정지 직후 잔류열 양은 원자로 출력의 6.6%가량이다. 한국표준형 원전은 정격출력이
약 300만㎾이므로 정지 직후에는 약 20만㎾나 된다. 잔류열은 시간이 경과하면 방사능 붕괴에
따라 감소하는데 감소율은 초 단위 경과시간을 t라 할때 t-0.2에 대략 비례한다. 하루(86400초)
가 지나면 86400-0.2=0.103, 즉 1/10 정도로 감소하여 약 2만㎾가 된다. 그러나 이후의 감소
율은 그렇게 빠르지 않다. 경과 일수d에 따라 d-0.2으로 줄기 때문에 2일 후에는 1일 후에 비해87%(17400㎾)，3일 후에는 80%(16000㎾)，7일 후에도 68%(13600㎾)가 남는다. 이화 같은 잔류열은 원자로 출력에 비해서는 미미하지만 일반적 통념으로는 여전히 막대한 에너지다.

따라서 원자로 정지 후에도 이 잔류열을 계속 냉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못하면 원자로
내 물이 끓어 고갈되고 이 후에는 핵연료가 손상되거나 녹는 사태，즉 사고로 진행될 수 있다. 요컨대 원자로는 정지 후에도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계속 냉각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 안전의 걸림돌이다. 원자로에 물을 주입하여 냉각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핵심은 그 기능이 ‘전천후’로 확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지진과 해일로 외부전원이 끊어지고 비상발전기가 마비되자 잔류열을 냉각시키도록 원자로에 냉각수를 주입하는 펌프가 불능상태가 됐고,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중대사고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원전이 안전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원인은 사람의 불확실성이다. 1979년 미국 TMI 원전에서도
여러 단계에서 사람이 실수와 오판이 사고를 유발했거나 악화시켰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도 사람의 오판과 지식부족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역량 부족에는 단순 실수도 있지만 몰라서 못하는것도 있다.

실수 위험은 교육과 훈련, 그리고 직무환경 개선을 통해 줄일 수는 있지만 사람의 문제이므로완벽을 보장할 수는 없다. 나아가 사보타주(sabotage), 노동관계 및 노동운동 고의적인 사유재산파괴나 태업 등을 통한 노동자의 쟁의행위)와 같은 의도적 공격 위험도 있다. 그렇다고 속수무책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운전원에 대한 교육훈련은 물론이고 사람이 실수하더라도 계통이 나쁜 방향으로 이동하지 않도록 하는 설계(pool proof)도 한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사람의 실수를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불안요소는 늘 존재한다.

요컨대 원자로의 설계, 건설, 운영의 모든 단계에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
하기 때문에 사고 확률은 매우 낮지만 이렇게 낮은 위험에서는 본질적인 불확실성이 남는다는 것이 어려움이다. 10만 년에 1회 혹은 그 이하와 같이 낮은 위험에 대해 더 이상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 사람의 한계이다. Nassim Taleb은 이러한 문제를 ‘검은 백조(Black Swan)’ 이론으로 펼친다. 이것은 희귀성, 극단 영향, 소급적 추론성의 세 가지 속성으로 특화된다. Taleb은 히틀러의 집권, 체르노빌, 9.11사태, 후쿠시마 모두를 검은 백조 현상으로 본다. 희귀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른다. 사건이 발생한 후 되돌아보고 그 과정을 소급적으로 추론할 수는 있지만 전망적 예측은 불가능하다.

‘안심’의 바탕 공고히 해야

원전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나 원전 사고는 검은 백조의 영역에 있다. 확률
론적 안전성 분석 결과 중대사고 위험이 연간 10-6이라는 결과에 안주할 수 없다는 것이 후쿠시마 사고에서 얻은 중요한 교훈이다. 때문에 원자력 안전 관리에는 보다 우직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작은 위험에 대해서는 비용과 편익을 비교하는 최적화 판단이 적합하지만 국가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검은 백조에 대해서는 적합하지 않다. 비용을 이유로‘ 안전여유도’를 침해하는 타협을 경계해야한다.

우선 안전계통은 가능하면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신설할 원전이라면 피동적 잔열제거 능력
을 갖추게 한다.

발전단가 감축을 위해 원전을 대형화하는 전략을 지양하고 본질적 안전성 보장이 용이한 중형
원자로 개발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또한 외부사상 위협 대책 수위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필요하다. 지진이나 해일에 대한 대비수준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때로는 무의미하므로 이해당사가 참여를 통해 그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항공기 추락의 경우 그러한 사건이 실제로 원전 중대사고를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선행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이 확립돼야 신설 원전을 기준에 적합하게 건설할 수 있고, 기존 호기에도 보완적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 의도적 공격에 대한 대비수준도 높여야 한다. 특히 사보타주와 사이버 공격의 위협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리적 공격에 대한 억제력도 냉정히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설계기준 위협(design base threat)를 설정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해킹을 차단하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주요계통 제어 컴퓨터는 오프라인으로 운영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한편으로는 운전변수 정보시스템 요구와 상충을 해소해야 한다.

원전 운영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영체계가 ‘안전제일’ 또는 안전문화 관점에서 최선인지 재
고해야 한다. 사기업이지만 일본에서 가장 큰 전력회사인 동경전력의 안이한 경영은 후쿠시마 사고 이전부터 지적돼 왔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기업이익으로부터는 다소 자유로운 공기업이지만 여전히 기업이익에 비중을 둔 경영평가에 의해 경영진이 압박을 받고 있다. 안전에 핵심 작용인자가 경영 정책이라면 규제가 경영에도 작용해야 하나 현행 법제에는 그러한 근거가 없다.
Taleb는 검은 백조에 견고한 사회를 위한 10대 원칙의 하나로 ‘인센티브’ 보너스를 받는 사람
에게 원자력발전소 경영을 맡기지 말라고 주장했다. 그의 판단이나 논리의 옳고 그름을 떠나 원전 운영자의 조직체계가 안전경영에 최선인지를 여과 없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안전규제 체계도 개선해야 한다. 원자력 개발·운영으로부터 규제의 독립 필요성은 계속 제기
돼 왔지만 아직 개선 계획이 명확하지 않다. 이미 20기를 넘는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라면 규제관청은 안전규제에 전념하는 조직이어야 마땅하다. 후쿠시마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나면 일본에서 규제체계 부적절성이 도마에 오를 것이다. 우리나라도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오는 7월에 예정된 국제 규제기관 평가에서 혹평을 받을 우려가 있다.

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발생한 경우 피해를 경감하는 비상대책과 그 준비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우선 내부적으로는 방사선 공포심 때문에 자초하는 사회시스템 와해와 파급피해를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방사선 위험의 실체에 대한 국민들의 바른 이해를 제고할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이행해야 한다. 국가 재난관리체계의 중심축도 분명히 해야한다. 재난이 발생한 경우 원자력 전문기관은 기술 지원기관일 뿐이지 재난관리 중심일 수는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자력 안전을 자성적 입장에서 돌아볼 계기를 제공했다. 우리나라는 원전 보유는 물론 원전기술 측면에서도 선진국 반열에 섰고 특히 국토가 작아 중대사고가 발생한다면 국가위기에 처할 우려가 크다는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적정 비율로 원전을 유지함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원자력 안전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앞선 정책과 체계를 갖춰야 할 당위성이 있다. 하드웨어 측면에도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겠지만 소프트웨어의 버그(bug)를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원전 사고의 피해를 증폭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안심’의 바탕을 공고히 해야 한다. 사고
후 수습 전략이나 대책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이를 준비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일본이 겪고 있듯이 원전 사고를 둘러싼 갈등과 충돌이 수습을 어렵게 하고 피해를 증가시킬 것이다.

이재기  한양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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