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궁지로 몰아넣는 건 ‘무지’가 아닌 ‘그릇된 확신’이라는 말이 있다. 2000년 대선 이후 정치활동을 접고 본격적인 환경운동가로서의 삶을 택한 전 미 부통령 앨고어(Al Gore)는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을 통해 지구온난화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심각성을 경고했다. 우리는 지구온난화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불편하겠지만 이제는 인류가 변해야 할 때”라며 열변을 쏟아내는 그의 강연에 귀를 기울여보자.

급격한 변화에 죽어가는 생태계

25년 전 네덜란드에 철새가 가장 많이 도착한 날은 4월 25일 알이 가장 많이 부화한 날은 6월3일이었다. 바로 애벌레가 나오는 시기였다. 그로부터 20년 후, 지구온난화로 애벌레가 나오는 시기는 2주나 앞당겨졌다. 그러나 새들의 부화 시기는 이를 따르지 못해 철새들은 치열한 먹이다툼을 벌여야 했다. 북미 서부에서 흔히 발생하는 ‘소나무좀(pine bark beetle)’은추운 겨울엔 사라지곤 했지만 지구온난화로 결빙일수가 줄자 겨울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소나무는 고사 상태가 됐다.
1400만 에이커(acre) 넓이의 알래스카 전나무 숲도 소나무좀 때문에 초토화됐다.
최근 학계에선 북극곰들의 익사 소식이 종종 보고된다. 지구온난화로 바다 위를 떠다니는 붕빙(선반얼음)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먹이를 찾아 바다에 뛰어든 북극곰들은 지친 몸을 기댈 만한 얼음을 찾아 헤매다 지쳐 익사하고 말았다. 바닷물의 온도가 높아지자 북극곰뿐 아니라 지구 전역의 산호초도 말라죽기 시작했다. 산호초가 말라버리자 산호초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은 포식자의 눈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더 큰 문제는 힘들게 낳은 알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것이었다.
지구온난화로 생태계는 빠른 속도로 변화됐고, 단시간에 생존방식을 바꿀 수 없었던 동물들의 생명은 위태로워졌다. 생태계 변화 속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리고 생물들은 100배나 빠른 속도로 멸종해가고 있다.

인류에게 닥친 재앙

인간도 지구온난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Nairobi)나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Harare)는 모기와 같은 전염병 매개체를 피하기 위해 모기의 서식지보다 고도가 높은 곳에 건설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모기의 서식지가 넓어지면서 이 도시들은 모기의 침입을 받게됐다. 이처럼 전염병 매개체의 서식지가 확대되면서 인류는 지난 25년간 30여 종류의 새로운 전염병에 노출됐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스(SARS)’도 그중 하나다.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자 자연재해가 증가했다. 인류는 최근몇 번의 극심한 혹서기를 겪었고, 몇 년 전 유럽에서는 유례없는 더위로 3만 5000명이 사망했다. 인도는 최고 기온이 50℃ 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해수 온도가 올라가자 폭풍도 강해졌다. 2005년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한 ‘카트리나(Hurricane Katrina)’로 인해 2500여명이 죽거나 실종됐는데, 이처럼 피해가 컸던 이유는 해수온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카트리나가 처음 플로리다(Florida)에 상륙했을 땐 위력이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뉴올리언스(NewOrleans)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따뜻한 바다의 수분을 흡수하면서 카트리나의 세력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 밖에 1990년대 이후 대형 태풍 발생 빈도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해수 온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는 가뭄도 유발한다. 한때 세계 최대의 호수였던 ‘차드호(Lake Chad)’는 최근 20년간 90%의 물이 증발해 사라졌다. 이로 인해 니제르와 카메룬 등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국
가의 주민들이 물을 확보하기 위해 분쟁을 벌이고 있다.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인간이 배출하는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다. 인류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북극의 빙하를 10년을 주기로 9%씩 녹이고 있다. 지금의 속도라면 머지않아 플로리다,
상하이, 인도, 뉴욕 등 대도시의 40% 이상이 물에 잠기고 네덜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지게 된다. 전 지구적으로 수면이 높아짐과 동시에 해수면의 온도가 상승해 초강력 태풍이 지금보다 2
배 이상 증가할 것이다.
또한 빙하가 사라지면서 빙하수를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인구의 40%가 심각한 식수난을 겪을 것이다. 이 끔찍한 미래가 현실이 될 날은 겨우 20여년밖에 남지 않았다. <불편한 진실> 제작에 참여한 제프 스콜(Jeff Skoll)은“ 나는 오랫동안 환경문제에 대해 공부해왔기 때문에 지구온난화에 관해서는 꽤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지구온난화가 20~30년 안에는 결코 영향을 미치치 않을 문제라고만 생각했지 이문제가 이토록 심각하고 즉각적으로 위험을 줄 수 있는 것인지몰랐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최대한 이 사실을 빨리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온 상승은 국가를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어떤 지역은 대홍수, 또 어떤 지역은 극심한 가뭄을 겪을 것이다. 기후는 완전히 뒤바뀌고 말 것이다. 이는 인류의 생명과 지구의 안위를 위협할 것이며, 우리는 결국평생의 생존 터전과 목숨까지도 잃게 될 것이다.

생존을 위한 선택

앨 고어는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그릇된 확신’ 세 가지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첫 번째는 ‘지구온난화를 안 믿는 학자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앨 고어가 지난 10년간 온난화 문제에 관해 학술지에 기고된 928편의 논문 중 10%를 표본 조사한 결과, 모든 학자가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또한 인간이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과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반면 지난 14년간 대중매체에 실린 기사는 636편 중 절반가량이 지구온난화에 대해 ‘정말 심각한 문제인지 불확실하다.’고 서술하고 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모두 동의하지 않았다는 통념은 소수 그룹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두 번째는 ‘경제와 환경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와 환경을 둘 다 충족시키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앨 고어는 자동차 시장을 예로 들며 사람들의 통념을 반박한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 최초로 「연비 기준강화법」을 제정했는데, 자동차 회사들이 소송을 걸어 이 법안에 제동을 걸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캘리포니아 자동차는 경쟁력 면에서 중국 자동차에 11년이나 밀리게 된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미국 자동차는 중국의 연비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수입이 되지 않았고, 결국 연비 높은 차를 만드는 회사가 세계 자동차 시장의 리더가 됐다.
마지막 ‘현실을 인정했을 땐 이미 모든 게 늦었다.’는 생각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안정을 찾는다. 그러다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됐을때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만다.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지구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앨 고어는 지금부터라도 지구가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에너지 절약, 대체에너지 공급,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공학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촉구한다.
<불편한 진실>은 우리 각 개개인을 온난화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생활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문제는 실천하려는 의지다. 당신은 삶의 방식을 바꿀 준비가 돼 있는가?

이성현 기자  safe@119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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