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눈발이 찾아들었다. 비록 24절기 중 소설은 지났고, 대설은 며칠 남았지만 일단은, 대학 진학을 앞둔 수험생들을 위한 서설(瑞雪)로 풀고 싶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체감 온도가 예사롭지 않으며, 창밖으로 눈이 흩날리고 있다. 아직 심각한 엄동설한(嚴冬雪寒)은 아니지만 융동설한(隆冬雪寒)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란 한자어가 있던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됐던 ‘눈 설(雪)’자가 기세 또한 등등하다.

그런데? 부정적 의미라, 과연 그럴까? 결코 아니다.

차형손설(車螢孫雪)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의 차윤(車胤)이 반딧불로, 손강(孫康)이 달빛으로 글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됐다. ‘공부한 보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착벽인광(鑿壁引光)이란 말도 있다. ‘벽을 뚫어 빛을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중국의 광형(匡衡)이 젊은 시절 기름 살 돈이 없어 등불을 켤 수 없자, 이웃집 벽에 몰래 구멍을 뚫어 거기로 들어오는 불빛에 책을 읽었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하지만 역시 눈(雪)에 관한 한 백미(白眉)는 정문입설(程門立雪)이다. 송나라 때 양시(楊時)와 유초(游酢)가 낙양에서 정이(程) 선생을 스승으로 모실 때의 상황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큰 눈이 내릴 것만 같은 어느 날. 양시는 모르는 문제가 있어 선생님께 문의하고자 유작과 함께 스승님 댁으로 갔다.

문을 두드리려다 보니 정이 선생이 졸고 있었다. 그러자 양시와 유초는 조용히 처마 아래에 서서 스승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이때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눈송이가 점점 커져 온 세상을 눈으로 덮었다.

한참 뒤 정이가 눈을 떴을 때는 눈이 한 자가 넘게 쌓여 있었다. 그런데 밖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추위에 입과 발이 꽁꽁 얼어 감각이 없었지만 스승님께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정리컨대 정문입설(程門立雪), 이는 바로 ‘정이 선생 문 앞에 서서 눈을 맞고 기다린다’는 뜻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모습이 이미 사라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또한 예외가 아닌 요즈음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이 절실함을 시사(示唆)하는 좋은 글귀이다.

갑자기 수년 전 KBS TV 한 프로그램에서 충격적인 내용을 접한 기억이 새롭다.

‘역사 스페셜 - 구운몽, 김만중의 사모곡’이었다. 구운몽을 통해 서포(西浦) 김만중과 그의 어머니 윤씨, 모자간의 지극한 사랑을 재조명한 것이다. 구운몽은 조선의 문신이자, 소설가인 김만중이 쓴 한국 고전 소설의 대표작이 아닌가?

TV는 이미 1832년 중국에서 구운몽을 개작한 ‘구운루’로, 1892년 일본에서는 일본 최초의 여성 작가 히구치 이치요가 필사(筆寫)한 구운몽이 존재한다고 보도했다.

이뿐이 아니다. 1922년 영국에서는 한국에서 목사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제임스 게일’이 구운몽의 최초 번역본 ‘The cloud dream of the nine’을 그리고 2011년 스페인에서도 구운몽을 번역 출간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각 나라에서 개작본을, 필사본을 그리고 번역본을 이뤘을까? 또한 그네들이 구운몽을 통해 보았다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동양인의 사상과 이상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더불어 진즉 김만중은 왜 구운몽을 썼을까? 구운몽의 매력은 무엇이고 주장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구운몽이 지닌 어떤 문학적 힘이 이처럼 세계를 사로잡았을까?

사실 ‘조선의 베스트셀러’인 구운몽은 일반 서민부터 양반 관료, 심지어 왕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의 사람들이 향유한 작품이었다. 특히 부녀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영조와 정조 역시 구운몽을 읽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단다. 때문에 가히 내용의 뛰어남이 짐작된다.

서인과 남인의 당파 싸움 속에서 세 번이나 유배 길에 올라야 했던 김만중, 분명 그는 유배지에 와서도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속에 지냈다.

유배지에서 어머니의 부음(訃音)을 들어야했던 김만중 또한 3년 후에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가 유배지에서 썼던 구운몽은 분명 ‘어머니를 위한 사모곡(思母曲)’이었다.

필자는 당시에 TV 시청 이후 바로 단행본을 구입해 일독(一讀)했지만 다시금 정독(精讀)하고 싶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에 말이다. 아니 길이길이 전할 불후(不朽)의 양서(良書)로 너무나 확실한 불간지서(不刊之書)이기 때문에 말이다.

이런 말도 있질 않은가.

“책 읽기에 좋은 세 가지 시기가 있다. 겨울철, 밤 그리고 비 오는 날이다”라는. 바로 독서삼여(讀書三餘)를 뜻하는 말이다.

결론컨대, 흩날리는 눈발을 보면서 정문입설(程門立雪)이 생각나니 부모와 스승은 모두 위대한 분들이다. 눈 오는 날도 비 오는 날 만큼 독서의 맛을 돋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살짝 독서삼여 중 비(雨)를 눈(雪)으로 바꿔치기 해보면 더더욱 흥미롭지 않을까?

지금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다. 구운몽을 다시금 읽고픈 마음이 솓구쳐서 말이다. 그것도 눈이 그치기 전에 말이다.

김종우 기자  safe@119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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