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또 저물었다. 우리 모두에게 정유년(丁酉年)은 경제침체의 고통과 충격적인 정치적 사건 등등으로 요동친 한 해였다. 2018년 무술년(戊戌年)을 맞아 최근에 다녀 온 북한산에 대한느낌과 더불어 고사성어 몇 개를 끄적거려 본다.

북한산은 기네스북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으로 기록돼 있을 정도로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 아니던가. 백운대(836m)와 인수봉(810m) 그리고 만경대(799m)가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어 옛 부터 삼각산이라고 불렸다. 무척 추운 날씨 속에 걷다 보니 백운대와 대남문의 갈림길에 도착했다. 그리고 두어 시간 후, 대남문에 도착했다. 북한산성 12개 성문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성문이다.

그런데 “문수사는 예로부터 오백 나한(羅漢)을 모시는 기도처로 유명했다. 아직도 그 치성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북한산 안에 있는 사찰 가운데 주위 경관이 좋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동쪽으로 보현봉이, 서쪽으로 비봉이 절을 감싸고 있다. 날씨가 좋으면 남쪽으로 관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또 멀리 서쪽으로는 한강 하류와 인천 앞바다가 펼쳐진다”일행 한 명이 이렇게 도움말을 던진다.

누군가 한 가지 더 첨언을 했다. “그런 까닭에 많은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좇아 이곳을 찾아 시를 읊곤 했는데, 문수사의 창건주인 탄연 스님이 이곳에서 읊은 시 한 수가 전해지고 있다”라고. 내용은 이렇다. “한 칸 방 어찌 그리 너무도 고요한가, 일만 인연 모두 적막하네/ 길은 돌 틈으로 뚫고 가고, 샘은 구름 속에서 새어나네/ 밝은 달 처마 끝에 걸려 있고, 산들바람 숲 속에서 일어나네/ 누구 저 스님 따라, 고요히 앉아 참 낙(樂)을 배우려나” 갑자기 숙연해졌다. 차치(且置)하고.

문수사에는 또한 문수굴로 불리는 천연동굴이 있다. 이 동굴법당은 영험 있는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 이승만 대통령도 모친이 멀리 황해도 평산에서 이곳까지 와서 동굴 속에 모셔진 오백 나한상에게 치성을 드린 끝에 그를 낳았다고 한다.

그 같은 인연으로 4·19 직전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82세의 고령을 무릅쓰고 이곳을 방문하여 ‘문수사’라는 현판을 직접 썼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전 전두환 대통령의 자필 현판도 걸려 있었다. 그것 참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었다.

다시금 산행의 의미를 돌이켜보니 몇 개의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우선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이다. ‘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의미이다.

‘길을 가다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어 돌파하고, 길을 가다 물을 만나면 다리를 만들어 건너간다’는 뜻이 아니던가. 세상을 살다 보면 얼마든지 우리 앞에 산이 가로 막히고, 물이 놓여 주춤할 때가 있다. 사실 지난해 역시 전혀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길을 만들고, 다리를 놓으면 그 험난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은 자명하다. 의미심장한 화두(話頭)임에 틀림없다. 핍박을 받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됨직한 한자어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손자병법에는 이런 말도 있다. ‘진불구명(進不求名) 퇴불피죄(退不避罪) 유민시보(惟民是保) 이합어주(利合於主) 국지보야(國之寶也)’ 해석컨대 ‘진격을 명령함에 칭찬과 명예를 구하고자 하지 마라. 후퇴를 명령함에 나중에 문책과 죄를 피하려 하지 마라. 진격과 후퇴의 판단 기준은 오로지 병사들의 목숨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얼마나 나를 보낸 조국의 이익에 부합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렇게 진퇴를 결정하는 장군이 진정 국가의 보배인 것이다’라고 풀이된다.

이렇듯 세상을 살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결정을 할 때가 있다. 때로는 뒤로 물러나야 할 결정을 할 때도 있다. 결국 진퇴에 대한 명확한 판단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진퇴를 판단하느냐이다.

그렇지만 요즘은 개인의 안위와 보신을 위해서 진퇴를 결정하기도 하고, 누구의 명령이나 눈치 때문에 진퇴를 결정하기도 하는 요지경(瑤池鏡)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이미 다가온 무술년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남의 칭찬과 비난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소신과 소명의식을 가진 ‘누군가’가 필요한 때이다. 제3자의 문책이나 칭찬을 의식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대신해 책임 있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누군가’가 진정 필요한 때인 것이다.

언필칭, 이런 ‘누군가’가 ‘진정한 지도자’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 오로지 보신(保身)과 안신(安身)만 추구하는 이들에게 기자, 이렇게 일갈(一喝)하고 싶다.

“새해를 맞았으니 ‘국가와 국민을 걱정하는 이가 누군지?’, ‘진정한 지도자가 누군지?’ 틈날 때마다 곱씹고 또 곱씹으라”고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해 연말, 교수들이 2017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을 뽑지 않았던가.

김종우 기자  safe@119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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