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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에 쌓은 ‘초연결사회’
김승용 기자 | 승인 2019.01.14 10:28

KT 지하구 화재··· 통신마비 대란

KT아현지사의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서울 서대문구와 마포구, 용산구, 중구, 은평구 5개 구와 경기도 고양시 등 일부 지역에서 대규모 통신장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카페, 식당, PC방 등 가게들은 물론, 응급환자가 있는 병원과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청·소방청·국방부까지도 업무 차질을 빚었다. 제4차 산업혁명과 함께 5세대 이동통신 등 신기술의 개발로 초연결사회에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는 가운데, 그 기반인 통신시설에 대한 안전문제가 대두된다.

 

-마케팅에만 급급했던 KT, ‘우회도 백업도 없었다’

-소방시설 全無··· ‘초기진압은 불가능했다’

-통신구 불 앞에 속수무책··· 구멍 뚫린 IT강국

-경찰청·소방청·국방부·병원도 ‘스톱’

 

지난 11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소재 KT아현지사 통신구에서 큰불이 나 서대문구와 마포구, 용산구, 중구, 은평구 5개 구와 경기도 고양시 등 일부 지역에서 대규모 통신장애가 발생했다. 장애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유·무선 전화 통화, IPTV 시청은 물론 음식점의 카드결제, 현금지급기 이용, 병원 내 환자진료 등 일상생활 다방면에서 차질이 빚어졌다.

특히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민방위 경보통제소 등 경찰청·소방청·국방부 일부 통신과 수돗물을 공급하는 상수도 시설까지도 멈춰버렸다. IT강국이라는 위상이 무색해질 정도로 이번 화재로 인해 수많은 통신서비스들이 일순간에 마비됐다.

통신서비스가 갑자기 두절되자, 병원에서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에 의료진 간 서로 콜을 할 수 없어 위급한 환자의 목숨이 불안에 놓였으며, 서대문·마포·용산경찰서에서는 장시간 경비전화(내부 전화망)와 일반전화, 지방경찰청과 연결된 112 신고시스템이 마비됐다. 또 한 시민은 지하주차장을 나오려다 카드결제가 막히면서 꼼짝없이 30분가량 발 묶이기도 했다. 카페, 식당, PC방 등 가게들은 서비스 불가, 현금 외 결제수단의 부재 등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고 이는 고스란히 며칠간의 영업손해로 이어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로 인한 재산피해는 집계된 것만 해도 약 80억 원이지만, 경제적 피해 등 간접적 피해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액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화재로 지하구를 국가기간 시설에 준하는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민영화된 KT, 시설관리는 필요 없다?

한편, KT가 민영화 이후 수익성과 효율성 강화에 초첨을 맞추면서 이번과 같은 통신대란을 야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원을 대폭 줄이고 시설투자와 관리를 소홀히 하면서 안전과 관련된 업무를 비정규직에게 맡긴 것이 사고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사고가 난 KT아현지사는 마포구·서대문구·중구·용산구 등을 담당하는 주요거점이지만, 주말이었던 당시 출근자는 2명에 불과했다. ‘02년 민영화 이후 국사·지사·지점을 통폐합하면서 아현지사는 '폐쇄형 전화국'으로 강등, 팀장급 이상 관리자가 없는 전화국급으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통신대란을 불러온 KT아현지사는 메인국사로부터 이어진 통신회로와 케이블이 분산되는 이른바 ‘허브(hub)지사’였다. 혜화·구로지사만큼은 아니지만 서울 서대문·중·마포구 일대로 연결된 광케이블 1천992조, 중계케이블 1천592조, 시내케이블 8천140조가 설치된 곳이다.

이토록 많은 통신케이블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신망 훼손에 대한 대비는 전무했다. D등급으로 분류된 아현지사는 의무적으로 백업할 필요가 없었고, 통신망이 훼손될 경우 다른 망으로 우회할 수 있도록 하는 이원화 작업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안이한 사고 대비와 함께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 용산구, 중구, 은평구 일대에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현지사 통신구의 화재는 기지국 2천833식, 인터넷과 IP TV 사용자 21만 5천778명, 전화 23만 773명, 전용회선 6천172회선에 이르는 통신서비스 대란을 빚었다. 현재 KT 통신국사는 전국에 총 56곳이 있지만, 이 중 A, B, C등급으로 분류된 29곳만이 백업을 해놓고 있다. 나머지는 D등급 27개 국사는 여전히 아현지사와 같은 통신재난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KT 홍성국사·남천안국사와 SK브로드밴드 전주덕진국사·광주광산정보센터·광주북구정보센터, LG유플러스 서울중앙국사 등 6개 국사의 관할범위가 도 또는 3개 이상의 시·군·구의 큰 규모임에도 D등급으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KT홍성국사의 경우 충남 6개 지역을 관활하며 대전으로 신호를 전송하는 관문이고, KT남천안국사는 천안 인접지역을 관할하며 대전으로 신호를 전송하는 역할을 하지만 분류 등급은 D등급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서울 종로구와 중구, 은평구, 마포구 등을 관할하는 LG유플러스 서울중앙국사와 SK브로드밴드의 전주덕진국사·광주광산정보센터·광주북구정보센터도 D등급으로, 광범위를 관할하는 중요시설임에도 이처럼 엉터리로 분류돼 있어 등급 상향의 재조정이 요구되고 있다.

피해 컸지만, 규모 탓에 소방 대상물서 빠져···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소방시설 설치의무가 부여되지 않는 소방법에 대해 현실적인 위험성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화재가 발생한 KT아현지사의 지하구에는 수동식 소화기 8대만 놓여있을 뿐이었다. 화재 시 자동으로 소화약제를 분사하는 소공간 자동소화설비도, 화재를 빠르게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감지·경보 기능을 하는 자동화재탐지설비, 케이블에 불이 붙는 것을 방지하는 연소방지도료 등 지하구에 의무적으로 설치됐어야 할 소방시설은 전무했다.

심지어는 그 흔한 CCTV도 없어 화재감식에서 어려움을 겪는 등 총체적으로 안전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지만, KT가 법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었다. 소방법상 KT아현지사의 지하구는 특정소방대상물로 분류된 8,881㎡ 규모의 건물부분과는 별도로, 그 규모(187m)가 작아 소방대상물(지하구)로 분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방법은 공동구(50m 이상) 또는 단독구(500m 이상) 등 지하구로 분류되면 소화설비·경비설비·피난설비·소화활동설비 등 일정 소방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전력이나 통신, 가스, 냉난방용 배관 등이 함께 들어서는 집합 시설 지하구(공동구)의 경우 50m 이상이면 특정소방대상물로 분류되지만, 공동구가 아닌 전력이나 통신사업용으로 사용되는 지하구(단독구)는 500m 이상이어야 지하구(특정소방대상물)로 정식 분류된다.

지하구는 시설물의 특성상 화재가 발생하면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초기 화재 진압을 놓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불이 난 KT 지하구는 자체적인 소방설비를 갖춘 것도 아니어서, 사고 당시 화재를 초기에 잡아줄 소방시설이 전혀 없었다. 사실상 화재 초기진압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한편 ‘18년도 전국에 특정소방대상물로 분류된 지하구는 총 583개(소방청 통계)로 이 중 공동구가 165곳, 전력·통신 등 단독구가 406곳이다. 이밖에도 KT아현지사 지하구와 같은 소방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지하구는 전국에 총 1천345곳이나 산재해 있다.

송전 356개소·배전 454개소 등 전력구 총 810개소, 지하철 병행통신구 349개소·통신국사 인입 통신구 186개소 등 통신구 총 535개소로 모두 합치면 규모 412km에 달한다. 속수무책이었던 KT지하구 화재와 그에 따랐던 광범위한 피해는 언제 어디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 등 보편화 땐 ‘아비규환’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되는 제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됨에 따라, 앞으로 이번과 같은 통신망 사고는 대형 인명피해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된다.

제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과 초지능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기존 산업혁명에 비해 더 넓은 범위에 더 빠른 속도로 더 크게 영향을 끼친다.

이에 따라 본격적으로 통신망이 자율자동차,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에 적용된 후 KT 지하구 화재와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휴대폰, 인터넷, 금융서비스를 넘어 대규모 인명피해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세대 이동통신(5G)이 도입돼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KT지하구 화재가 발생했다면 상상하기도 끔찍한 대형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작년 3월 미국 애리조나에서 우버의 자율주행차가 보행자를 치는 사망사고가 발생했으며,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도로 분리대를 들이받고 다른 차량 두 대와 연쇄 충돌해 운전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사고 후 애리조나주 피닉스·템페와 피츠버그, 샌프란시스코, 캐나다 토론토 등지에서는 자율주행차 시험운행을 전면 중단했다.

또 통신망을 이용하는 IoT나 AI 로봇도 예기치 못한 통신망 단절로 인적, 물적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작년 10월 경남 진주 남강에서 열린 유등축제 개막식에서 공연에 이용된 드론 30대 중 10여 대가 남강과 촉석루 지붕 등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관람객 1만여 명이 모인 축제에서 인적피해가 발생할 뻔한 아찔한 사고였다.

이처럼 신기술과 관련한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한편, 초연결사회화와 함께 사고의 위험성은 증대되고 있다. 기술혁신으로 현대사회에서는 통신분야가 인명피해 등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이와 관련해 통신분야의 중요성에 따른 공공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초연결사회 본격화에 앞서 안전문제 선결돼야

이번 화재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사실 비관적이다. 지하구 화재로 피해가 속출하자, 정부는 화재의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소방시설 설치 강화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지난 '94년에는 종로 지하공동구, 구미 전기공동구, 남대구 지하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며, '97년에는 서울 올림픽아파트 공동구 화재, '02년 신양재 지하전력구 화재, '04년 서울 개포동 지하전력구 화재, '06년 구리 지하전력구 화재 등 지하구 화재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오늘날 IT분야 사고는 20년 전보다 몇십 배는 더 큰 피해를 낳는다.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그 위험의 정도와 피해의 범위는 점점 더 커진다. 정부는 자율자동차나 AI 등 4차 산업 핵심분야에 연구개발 등 투자를 올인하고 있는 반면, 정작 중요한 그 기반시설에 대한 안전대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안전적으로 받쳐줄 뿌리인 안전대책도 동시에 준비되어야만 한다.

그동안 통신사들은 그동안 중요성에 따른 안전관리가 아닌 설치를 위한 설계기준 및 운영관리로 사고위험이 크고 신속한 대처가 어려웠지만 이를 방치해 왔다. 국가기간망 사업자인 KT를 포함한 통신사업자들은 시설의 중요성에 걸맞은 안전 의식을 갖고 만일의 사고에도 철저히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KT아현지사 지하구 화재와 같은 통신망 사고는 앞으로 그 위험성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커질 것이다. 초연결사회의 본격화에 앞선 철저한 안전관리와 사고방지를 위한 법제도 정비 등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김승용 기자  safe@119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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