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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복된 '교제 살인', 겉도는 '근절 대책', 머나먼 '여성 안심'
박근종 | 승인 2024.05.14 17:15
박근종 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지난 5월 6일 서울 강남역 인근 고층 건물 옥상에서 2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한 20대 여자친구를 살해한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범행 전에 미리 흉기까지 준비하는 계획범죄로 전형적인 ‘교제(데이트) 살인’이다. 지난 4월 1일 경남 거제에서도 남자친구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20대 여성이 병원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지난 4월 10일 오후 숨졌다. 그보다 한 달 앞선 3월 25일 오전엔 경기 화성에서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여자친구 어머니에게까지 흉기를 휘두른 남성이 구속됐다. 이렇듯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되는 피해자가 3일에 1명꼴로 생겨나는 등 잔혹 범죄가 잇따르자 ‘교제(데이트) 폭력’·‘교제(데이트) 살인’ 예방과 처벌 강화를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이번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발생한 ‘교제(데이트) 살인’은 수능 만점자 출신인 서울 명문 의대 재학생 최모(25) 씨가 “헤어지자”라고 했단 이유로 여자친구를 계획적으로 살인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연인을 소유물로 여기는 반인권적 ‘교제(데이트) 폭력’에 철퇴(鐵槌)를 가할 강력한 대처방안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주변인들은 그를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으로 기억하며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재학 중 성적 부진으로 유급된 사실이 있으며, 그 후 교우관계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지난 2월부터 의대생들이 대거 휴학한 가운데 최모 씨는 최근까지 학교에 계속 다녔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듯 잇단 ‘교제(데이트) 살인’의 심각성이 도를 넘었는데도 범죄자 신상 얘기로 사건의 본질이 희석되고, 정부 역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으니 답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실제 강남 최모 씨 사건과 같이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교제(데이트) 살인’은 최근 들어 발생빈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교제(데이트)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1만 3,939명으로 2020년 8,951명 대비 무려 55.7%인 4,988명이나 급격히 증가했다. 검거된 피의자 수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해도 하루 평균 38.2건의 ‘교제(데이트) 폭력’이 발생한 셈이다. 범죄 유형으로는 폭행·상해(9,448명)가 67.8%로 가장 많았고, 체포·감금·협박(1,258명)이 9%, 성폭력(453명)이 3.2% 등의 순으로 발생했다. 신고 건수도 같은 기간 4만 9,225건에서 7만 7,150건으로 34%인 2만 7,925건가량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해 ‘교제(데이트) 폭력’ 사건과 관련해 구속수사를 받은 인원은 310명, 전체 검거 피의자의 2.22% 수준에 불과했다. 이렇게 구속수사 비율이 낮은 데는 최근 ‘교제(데이트) 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급부각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남녀 간의 사랑싸움이기 때문에 이를 구속까지 시키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온정적인 인식과 관대한 정서가 있었는데 아직도 이러한 인식과 정서가 남아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교제(데이트) 폭력’이 ‘교제(데이트) 살인’으로 이어진 사례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3월 발표한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배우자’나 ‘교제(데이트) 관계(과거 또는 현재의 교제·데이트 관계로 동거·소개팅·채팅·조건만남 등 포함)’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인 피해(살인·살인미수 등 포함)’를 입은 여성은 449명에 이른다. 실제 살해된 여성은 최소 138명에 이르고 살인미수는 311명에 달한다. 이 중에 ‘교제(데이트) 살인’ 피해 여성은 207명이었다. 연령 별로 보면 교제(데이트) 관계에서 살인이 가장 많이 일어난 연령대는 40대(11명)다. 살인미수는 20대(30명)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다. 평균 2.64일당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아는 남성에게 살해된 셈이다. 살인미수까지 포함하면 매일 1.23명의 여성이 살해되거나 살해 협박(살인미수)을 받은 셈이다.

이렇게 ‘교제(데이트)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법제화하여 ‘교제(데이트) 폭력’ 범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령은 아직까지 없다. ‘교제(데이트) 폭력’은 사실혼 관계로 인정받지 못하면 가정폭력을 다루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스토킹 행위가 입증되지 못하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보호 조처도 받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접근금지·분리조치 등이 불가능하다. 또 일반 폭행 사건과 같이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다.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교제(데이트) 폭력’의 특성상 가해자의 회유·협박 등으로 범행이 곧잘 은폐되고 있거나 알게 모르게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이다. 예컨대 경남 거제에서 살해당한 여성이 죽기 전까지 무려 11차례나 남성을 신고했지만, 매번 처벌불원으로 종결된 것이 그 본보기다. 연인 관계에서 정서적 학대 등이 동반되는 ‘교제(데이트) 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교제(데이트) 폭력’이 아직도 명확한 정의조차 정립되지 못한 데 있다. 그동안 ‘교제(데이트) 폭력’ 및 ‘교제(데이트) 폭력 범죄’를 정의하고 ‘교제(데이트) 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 및 그 절차의 특례와 피해자보호 절차를 마련하기 위해 심신장애 형 감경 및 반의사불벌 조항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고 응급조치, 잠정조치 등으로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절차 등을 규정한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등이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교제(데이트) 폭력’은 주로 폭행·협박죄로 입건하는데 반의사불벌죄여서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내면 처벌받지 않는다. 가해자의 회유로 피해자는 처벌불원을 거듭하다 결국 살해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반의사불벌 조항을 폐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교제(데이트) 폭력’ 보호 대책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이번 강남역 인근 살인사건에서도 ‘교제(데이트) 살인’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은 겉돌고 있다. 가해자가 ‘명문대 의대생’이란 점만 관심이 높아지고, 피해 여성의 신상까지 유포됐다. 아울러 충격적인 수능 만점자의 살인사건에서, 우리 사회는 입시에 ‘올인’하다 인권·인성 교육을 놓친 한국 교육의 비뚤어진 민낯과 일그러진 자화상 또한 뒤돌아보고 성찰해야 한다. 반복되고 거듭된 ‘교제(데이트) 살인’에도 겉돌기만 하는 ‘근절 대책’으로 자꾸 멀어만 가는 우리 사회의 ‘여성 안심’이 조속히 담보되는 ‘여성 안전사회 구현’은 요원(遙遠)한 환몽(幻夢)인지 정부와 국회는 깊이 고민하고,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잠자고 있는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교제(데이트) 폭력’을 막아야 한다. 언제까지 이 참담한 죽음의 행렬을 지켜만 보아야 하는지 통탄할 일이다.

박근종  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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