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는 물론 일반국도를 차로 이동하면서 죽은 고양이와 개, 또는 야생동물을 본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살기 위해 건너는 길이 황천길이 되고 있는 동물들의 목숨만큼이나 로드 킬로 인한 교통사고도 늘고 있어 그 대책이 시급하다.

도로 갓길에는 장갑, 신발, 음료수 병, 과일 껍질 등이 있다. 그러나 갓길에는 쓰레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버린 물건들 옆에는 바로 몇 분 전까지 인간처럼 붉고 뜨거운 피를 가졌던 하나의 생명이, 걸레처럼 나뒹굴고 있다. 그것은 건너편 숲으로 옹달샘으로 가고 싶었던 토끼였고, 새끼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고 싶었던 수달이었다. ‘인간’이라는 포유동물의 빠른 이동을 위해 고안된 ‘도로’에서 먼지처럼 사라지는 생명들의 종(種)과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 실상은 밝혀지지 않거나 은폐되고 있고, 도로는 야생의 서식지를 침탈하며 계속 확장되고 있다. 태영, 천권, 동기는 국내 최초로 체계적인 로드 킬(야생동물 교통사고)조사를 한다. 영화를 만드는 나는 그들의 조사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들과 나는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을 안은 채, 차들이 질주하는 위험한 도로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다.
-독립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 中-

위의 내용은 황윤 감독의 독립 장편영화 ‘야생동물 3부작’의 세 번째 작품이자 로드 킬을 소재로 한 <어느 날 그 길에서>의 한 대목이다.
황 감독은 한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를 준비하는 데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2004년 가을에 시작해 2006년 초에 촬영을 마쳤으니, 시간상으로는 1년이 넘지만 실질적인 촬영은 30∼40회차 정도로 길지 않았다고 말했다.
많은 동물 사체가 등장해 오랜 기간 작업한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자신도 처음 촬영을 시작할 때 얼마나 촬영해야 분량을 얻을 수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 첫날부터 만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수리부엉이나 소쩍새 같은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인터뷰에 답했다.
그만큼 고속도로 위에서 너무나 쉽게 야생동물의 죽음을 목격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황 감독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가까운 집 앞 도로에서나 시내 도로에서 개나 고양이 등의 사체를 보고 눈살을 찌푸린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고속도로에서 일어나는 로드 킬 수치만 따져도 2005년 6,543마리, 2006년 5,565마리 등이며, 2006년 국정감사 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8.9마리의 야생동물이 로드 킬을 당한다고 한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전국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로드 킬은 모두 3천 2백 41건으로 중앙선, 서해안선, 호남선 순으로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 중 족제비나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들은 대부분 통계에서 빠져있을 뿐 아니라 고속도로 외에 국도와 지방도 등은 통계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로드 킬의 문제점 중 대두되고 있는 첫 번째는 천연기념물과 희귀종이 이로 인해 줄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박종화 교수는 “육식동물, 포식자는 활동권이 넓어야 그 안에 있는 1, 2차 생산자를 먹고 살게 됩니다. 소쩍새 같은 것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데 그런 것들이 도로 위에서 먼저 죽어나가기 때문에 로드 킬이 참 문제”라고 말했다. 천연기념물의 감소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크게 문제 되는 것은 동물들의 희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통사고 등 인명피해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례>

경남 하동군 화개면 부춘리 검두마을 앞 19호선 국도에서 하동쪽으로 달리다 마주오던 차량 4대와 잇따라 충돌, 6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를 된 광광버스 운전기사 김모씨는 “도로 우측에서 갑자기 뛰어든 노루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반대편 자로로 급히 꺽는 순간 차가 중앙선을 넘었어요, 정말 눈 깜짝할 순간이였어요”라고 당시를 증언했다.
사고 지역 주민 또한 “사고가 난 도로는 약간 굽은 편도 1차로로 양측이 산과 숲이어서 야간은 물론 대낮에도 노루와 멧돼지들이 자주 출몰,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곳”이라고 말했다.
로드 킬로 인해 사고를 당한 운전자들이 하나같이 내뱉는 말이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동물의 움직임을 피하기 위해서 핸들을 자신도 모르게 꺽게 된다’는 것이다.
각 지방단체와 경찰 등에 따르면 도로에 뛰어든 야생동물과 부딪히거나 이를 피하려다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명피해를 입는 등 로드 킬이 운전자들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직접 동물과 부딪히거나 피하기 위한 사고 외에도 죽어있는 동물을 운전 중에 보는 것만으로도 심적으로 많은 부담을 느껴 안전운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환경부 자체 조사에 따르면 광역교통망 확장 및 도로의 고규격화 등 도로신설 증가로 주요 생태축이 단절돼 로드 킬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100,278km였던 도로가 2005년 1년 만에 102,293km로 늘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재 관련부처에서는 로드 킬을 줄이기 위한 일환으로 생태통로설치에 열을 높이고 있다. 생태통로란 야생동물이 도로나 댐 등의 건설로 인해 서식지가 절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야생동물이 지나는 길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자연환경보전법 제 2조에 명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자연환경보전법은 자연환경의 보호와 생태계의 보전 및 야생동·식물의 멸종 방지 등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법률로서 생태통로는 야생동물의 이동로 제공, 야생동물 서식지로의 이동, 천적 및 대형교란으로부터 피난처 역할, 단편화된 생태계의 연결로로 생태계의 연속성 유지, 기온 변화에 대한 저감 효과, 교육적·위락적 및 심미적 가치제고, 개발억제 효과 등의 역할을 위해 만들어졌다.
생태통로는 조성 위치에 따라서 선형·육교형·터널형으로 구분된다. 도로·철도 또는 하천변 등을 따라 조성된 선형 통로는 식생을 이용해 통로가 조성된다.
횡단부위가 넓고 절토지역 또는 장애물 등으로 동물을 위한 통로 조성이 어려운 곳에는 육교형 통로가 만들어진다. 터널형은 인간의 영향이 빈번한 지역으로 육상통로를 조성하기 위한 연결 지역이 없을 경우 또는 지하에 중소하천이 있는 경우에 만들어진다.
이러한 형태 외에도 한국도로공사가 생태계 보호와 이용고객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색다른 생태통로를 설치한 바 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앞, 뒷다리 사이의 날개막을 이용해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천연기념물 제328호이자 멸종위기 2급인 하늘다람쥐를 보호하기 위해 88고속도로 남원-남장수(15km) 구간에 하늘다람쥐 전용 생태통로 설치했다.
하늘다람쥐 전용 생태통로는 하늘다람쥐의 생태적 특성을 파악해 도로를 횡단하지 않고 날아서 건널 수 있도록 도로 양쪽에 기둥을 세워 하늘다람쥐가 활공을 통해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제작·설치된 것이다.


전문성 결여된 로드 킬 대책은 무용지물

한국도로공사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165억 원을 들여 생태통로 17곳과 유도펜스 116km, 소목 6만 주를 식재하는 등 야생동물 로드 킬 방지대책을 시행했다. 또한 2010년까지 559억 원을 투입해 생태통로 49곳, 유도펜스 228km, 수목 25만 주를 추가로 식재하는 중·장기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로드 킬로 인해 목숨을 잃는 야생동물이 늘어가자 2005년 이낙연 前건교위 소속 의원은 국정감사를 통해 현재 시스템의 생태 통로는 무용지물과 다를 것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의원은 로드 킬이 줄지 않고 있는 이유로 ▲불충분한 생태조사와 생태통로의 잘못된 조성방식 ▲로드 킬 방지시설 설치시기의 문제 ▲전문가 평가 미실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환경부에서는 로드 킬로부터 동물들을 보호하는 한편,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논의 중이다.
환경부는 생태통로 등이 확산되는 데도 불구하고 로드 킬이 줄지 않는 이유를 분야별로 분석해서 발표했다.
첫 번째로는 야생동물 로드 킬 조사 및 처리방법의 미흡이다. 로드 킬 조사기관(지방환경관서,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라 조사 횟수, 조사 시기, 조사 대상 등이 각기 다른 방법으로 실시돼 조사 결과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또한 로드 킬 조사 인력이 부족하고 조사원의 전문성도 낮아 조사 결과의 정확도와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로드 킬 조사 시 조사원 1인이 운전과 조사를 병행해, 안전상의 위험을 이유로 대부분 주행하면서 육안으로만 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지적된 부분은 생태통로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부분이다.
설치 계획 시 문제점으로 우리나라의 생태통로는 각종 개발 사업에 따른 저감대책으로 환경영향평가 시 조사된 자료만을 이용해 설치하고 있어, 생태통로 설치 전 정확한 생물서식 현황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지적됐다.
따라서 생태통로의 위치 선정이 부적정하고 목표종의 행동습성 고려도 미흡해 설치 후 야생동물의 이용이 저조한 곳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또한 전국 생태통로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가 미흡해 기 설치된 생태통로 위치의 적정성 및 추가설치 여부 등의 파악이 어려운 것도 문제점으로 뽑혔다. 이는 설치기관인 건교부와 지자체 등이 생태통로 유형 등 구분방법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 설계와 설치에 돌입한다고 해도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생태통로 진입부분이 급경사이거나 입·출구 부분 처리가 미흡해 야생동물의 진·출입이 어렵게 설치돼있을 뿐 아니라 야생동물을 이동통로로 유도하거나 도로로의 진입을 방지하기 위한 유도시설이 야생동물의 생태적 습성에 맞지 않아 효용성이 낮다. 또한 안전한 동물 이동을 위해 주변 자연식생과 유사해 동물을 유인할 수 있는 수종을 식재해야 하나, 이에 대한 고려가 미흡해 은신처 제공 및 생태통로로의 유도가 어려운 실정이다.
생태통로가 만들어져 있다고 해도 그 후 관리 상태가 소홀할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현재 전국 생태통로 252개소 중 모니터링을 시행하고 있는 곳은 총 28개소에 불과(환경부 양양군 구룡령 등 8개소,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시암재 등 4개소, 한국도로공사 강릉시 동해선 등 16개소)하다. 특히, 백두대간 내 지방도 및 백두대간 외 국도·지방도에 설치돼 있는 생태통로에 대한 사후관리도 전무한 실정이다. 또 기 설치된 생태통로에 대한 지속적인 사후관리가 미흡해 훼손된 시설물 및 고사목 등의 방치로 야생동물의 서식공간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상태다.

위치, 종별에 맞는
맞춤형 생태통로 설치 추진 중

우선 체계적인 로드 킬 조사를 위해 ‘야생동물 로드 킬 조사 통합지침’을 수립해 시행할 예정이다. 조사 시 조사기관별로 상이한 조사 대상, 조사 시간 및 횟수 등 조사 방법을 동일하게 함으로써 조사 결과의 객관성 및 신뢰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발생지점 기록 시 오차범위 최소화를 위해 조사원별 동일한 맵이 지원되는 GPS장비를 일괄 구매해 조사원에게 지원하고 조사원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교육을 실시해 조사원의 전문성을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로드 킬을 당한 동물의 사체 등을 갓길로 옮겨놓는 등의 동물 처리 요령에도 변화가 생길 듯하다.  
부상당한 야생동물 발견 시 119구조단 또는 야생동물 구조·진료기관 등으로 연락해 이송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사체에 대해서는 폐기물관리법에 의해 생활폐기물 처리기준 및 해당 기초 자치단체의 조례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처리하게 된다. 또한 사체를 박제나 표본 등 교육용으로 활용하고자 할 경우 ‘야생동·식물보호법’ 및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절차에 따라 처리하게 된다.
가장 문제시 됐던 생태통로 설치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변화를 꾀한다는 것이 관련 부처의 입장이다. 우선 환경부, 건설교통부, 지자체, 한국도로공사, 전문가, 환경단체 및 지역주민 등을 중심으로 ‘생태통로조사단’을 구성하고, 생태통로 설치 전·후 모니터링, 기 설치된 생태통로와 백두대간 및 주요 정맥 생태축 단절 현황 조사 등 야생동물 로드 킬 예방과 관련된 조사 참여 및 정책 조언이 이루어지게 된다.
또한 야생동물의 종별 특성에 맞는 생태통로 설치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환경친화적인 도로건설지침’에 의한 생태통로 설계 및 설치를 기준으로 ▲육교형 ▲도로통과 지역 중 흙 쌓기에 의해 농수로, 늪지, 개울 등이 단절되는 경우 소형 동물의 이동이 많은 지역의 골짜기를 따라 동물용과 수로용을 구분하는 암거형 생태통로 ▲작은 소택지를 따라 이동통로를 연결하며, 동물 전용과 수로 겸용 파이프형을 나누는 파이프형 ▲생태통로 입구 주변은 야생동물과 파충류의 이동 시 은폐를 위해 인근 자생수목과 유사한 수목을 식재해 수림을 조성하는 야생동물을 위한 은폐수림 ▲동물이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옹벽부에 경사로를 설치해 이동로를 확보하는 차폐벽을 이용한 생태통로 ▲현지 여건에 따라 토양 및 초본류 식재, 선반 설치, 서식처와 피난처 제공, 유도휀스, 동물출현표지판 등 적합한 형태의 생태통로 ▲안전한 유도를 위한 보조시설 설치 ▲소형 동물의 도로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유도울타리 등 동물 침입 방지시설 설치 ▲도로 건설에 따라 발생되는 교차로, 터널 입·출구 등의 여유 공간은 수목식재 위주의 녹지 공간 보다는 다양한 환경을 조성해 대체서식지로 활용 하는 등 약 11가지의 형태로 설치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야생동물 로드 킬을 감소시키기 위해 시범사업으로 실시한 내비게이션 로드 킬 안내방송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나, 산간구간 도로를 운행할 때 내비게이션을 통한 동물보호 안내방송을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일부 동물애호가들은 야생동물에 대한 안전대책이 세워지는 것을 환영하면서도, 일반 도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개나 고양이의 로드 킬에 대해서는 아직 관심조차 미비한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대대적인 대책 안이 아니더라도, 사체를 치우는 등의 일을 지역단체부서를 신설해서라도 하는 것이 목숨을 잃은 동물들에게도 운전자와 도보를 하는 시민들에게도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편안한 삶을 영유하기 위해 우리는 수없이 많은 산과 들, 수로를 뚫고 밀었으며, 막아왔다. 그러면서도 원래 그곳의 주인이었던 동물들에 대한 배려는 뒤로 밀어두고 있다.
인간의 편안함을 위한 도로가 또 다른 생명에게는 죽음의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생태계 파괴는 인류의 파괴의 시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 | 차미경 기자 chamk@safe119news.com

safe119  

<저작권자 © 주식회사 한국안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