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 권리는 인터넷을 둘러싼 수많은 이슈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주제다. 대중들은 잊힐 권리를 ‘인터넷에서 자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권리’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잊힐 권리는 불법적인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다. 오히려 합법적인 정보들 중에서 지금은 의미가 없어진 정보들을 검색에서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가 적합하다.

잊힐 권리에 대한 30년 논쟁

잊힐 권리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유럽연합(이하 EU)은 개인정보의 처리 방식을 규정하는 ‘유럽 개인정보 보호 규정 및 지침’을 만들면서 잊힐 권리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말 그대로 언급 수준이었고 잊힐 권리가 명문화 된 것은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12년 EU가 일반정보보호규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잊힐 권리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해야 하는지의 기준을 두고 인터넷 업계와 유럽 정부는 지금까지도 갈등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던 중 유럽 사법재판소가 2014년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첫 판 결을 내리면서 잊힐 권리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

2010년, 과거 기사에 대한 삭제 요청 실현

2010년 스페인의 변호사 ‘마리오 코스테하 곤살레스’는 스페인 구글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한 결과,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98년 연금을 제때 내지 않아 집이 경매에 처해졌다는 사실이 보도된 기사를 발견했다. 곤살레스는 ‘이젠 형편도 나아졌고 빚도 다 갚았으니 과거 내용은 자신에 대해 적절하지 않은 정보’라고 판단해 구글과 신문사에 링크 및 기사 삭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구글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그는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원에 기사와 검색 결과 노출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대해 스페인 개인 정보보호원은 기사는 삭제하지 않되, 구글 검색 결과 화면에서 관련 링크를 없애라는 판결을 내렸다. 구글은 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하게 된다.

이후 스페인 법원을 거쳐 EU 최고 법원인 유럽 사법재판소까지 올라간 이 소송에서 최종 승자는 곤살레스였다. 유럽 사법재판소는 “구글 검색 결과에 링크된 해당 웹페이지의 정보가 합법적인 경우에도 링크를 삭제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지만, 기사 원문에 대한 삭제 권한은 인정하지 않았다. 잊힐 권리를 제도적으로 처음 인정한 판결이 나온 것이다.

EU가 인정한 잊힐 권리의 범위

구글은 유럽 사법재판소의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 이후 유럽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삭제를 원하는 검색 결과를 접수하는 페이지를 개설했고, 불과 4일 만에 4만 1,000여 개의 삭제 요청이 접수 됐다. 이후 구글에 접수된 요청은 모두 100만 건에 달했으며, 이 중에는 곤살레스처럼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기사 삭제 요청도 있지만, 살해 혐의를 받았던 사람의 기사 삭제 요청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구글이 최종적으로 검색 결과에서 개인정보를 배제한 건은 절반도 되지 않는 40만 건 정도였다.

이 같은 EU의 판결은 ‘알 권리’나 ‘표현의 자유’보다 프라이버시에 우선순위를 두는 유럽 문화가 적용된 사례였다. 온라인에서 합법적으로 공개된 정보 중 진실에 부합하고 공공에 관한 것이며 해악을 끼치지 않는 정보라 하더라도 개인 프라이버시에 관한 것이라면 링크를 삭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결정이었다.

단, 어디까지나 특정인의 이름으로 검색했을 때라는 제한이 있었고, 다른 키워드로 검색을 했을 때의 결과물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EU가 인정한 잊힐 권리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적용되는 권리인 셈이다.

국내 현황, 잊힐 권리 법제화 논의

국내에서의 잊힐 권리는 상대적으로 더 적극적인 의미로 통용된다. 예를 들면, 자신에게 던져진 악성 댓글이나 과거 이성친구와 맺었던 성관계 동영상이 인터넷에 노출됐으니 삭제해 달라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삭제는 현행법상으로 불법이기 때문에 실행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따라 잊힐 권리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현재 방송통신위원회를 주축으로 잊힐 권리의 법제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최광 기자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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