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철 호

식품안전평가위원장
고려대학교 생명공학원 교수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고 세계화됨에 따라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증대하고 있으며 여기에 맞추어 정부관련 기관도 조직을 바꾸고 인력도 보강하여 식품안전성 제고를 위한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식품위생 안전에 대한 소비자의 의식수준은 경제수준, 과학기술 수준, 건강의식 수준, 정보전달 수준, 식품사건의 경험 등에 따라 점차 높아지고 있으나, 업계의 대응이나 언론의 수용태세, 관리 당국의 관리기술 등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식품산업의 위생 안전성을 점검하고 그 대응체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그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식품위생사건들의 전말을 조사 분석하고 철저한 대책을 수립하는 일이 필요하다. 대형 식품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가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한 면밀한 조사 분석이 없이 며칠이 지나면 잊혀져 버리고 유사한 사건들이 반복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필자는 1997년도에 첫 번째 식품위생사건백서(고려대학교출판부)를 저술하였으며, 그 이후 10년동안 발생한 사건들을 다시 조사하여 2005년도에 식품위생사건백서 II(고려대학교출판부)를 출판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식품위생사건의 원인은 크게 여섯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1) 식품제조 및 유통업자의 고의적인 범법행위, (2) 식품제조 및 유통업자의 무지, 부주의와 과열경쟁에 의한 사건, (3) 식품법규의 모순이나 해석상의 문제에 의한 사건, (4)  비전문가들의 무모한 고발 및 단속과 무분별한 보도에 의한 사건, (5) 첨단기술이나 분석기술의 발전에 의한 안전성 시비와 논란, (6) 외국의 질병이나 사건에 의한 국내 파동.
초기단계( ~ 1995)의 우리나라 부정 불량식품 사건 사례를 분석하여 보면 제조업자의 고의적인 행위보다는 무지에 의한 실수가 대부분이며, 이러한 실수는 비전문가들의 잘못된 표현으로 필요 이상으로 문제가 과장 보도되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에는 방사선조사기술이나 유전자변형기술과 같은 첨단 과학기술의 이용과 산물에 관한 안전성 논란, 구미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광우병이나 튀김식품의 아크릴아마이드 생성 또는 내분비장애물질에 대한 우려 등 세계적인 이슈가 그대로 우리사회의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또한 국가공권력의 전문성 결여와 무모한 단속과 처벌, 그리고 이것을 침소봉대하여 과장 조작 보도하는 언론의 선정적 자세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식품의 안전성 논쟁에는 당사자인 식품제조유통업자와 소비자 이외에도 식품위생당국과 검찰, 경찰 등 관련기관, 식품위생 전문가 및 관련 학계, 신문 방송 등 언론매체, 그리고 소비자 단체들이 깊이 관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식품위생사건은 식품제조업자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외의 다른 관련자들에 의하여 발생하거나 악화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식품위생 안전관리체제의 발전 과정을 되돌아보면 1996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만들어 진 것이 큰 전환점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전에는 식품안전관리를 책임질 국가 두뇌집단이 사실상 부재했던 것이다. 식품안전관리는 고도의 과학기술 지식을 요구하는 전문직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관리행정가들에 의해 주로 다루어졌다. 그로인해 겪지 않아도 될 여러 가지 식품위생 사건들이 발생했고 많은 기업들이 고통을 받았으며 소비자들은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그러나 식약청이 10여년간 식품안전업무를 관장하면서 새로운 문제점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식품산업의 규모나 식품사건이 주는 사회적 충격의 크기에 비하여 식품의약품안전청 내의 식품 관리업무 인력이나 정책 결정자의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여론에 떠밀려 식품위생법 개정 시안을 내 놓았으나 현실성이 결여되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식품안전처의 신설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식품안전관리에서 식품의 전문성을 높이고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식품관리 행정을 일원화하여 일관성이 있고 장기계획이 가능한 식품안전 관리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국회에 상정된 식품안전처 설립 안은 약사회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고 말았다. 식품의 생산에서 소비(Farm to Table)까지 일관된 안전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식품안전처의 설립이 필수적이다. 식품안전처가 설립되고 약품청도 신설되어 국민 보건 안전관리의 전문성이 확대되는 상생의 시대가 열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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