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적 소비로서의 미디어 모방범죄

소비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소비자는 모든 것을 소비하고 있다. Ariely와 Norton의 개념적 소비(Conceptual consumption)라는 논문에 의하면 현대인은 음식, 물, 공산품 등의 물리적 실체라는 기본적 생존에 소요되는 시간이 축소되면서 기대, 목적, 능숙, 적합 등 심리적 개념을 소비하는 시간이 증가하여 일상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중 영화, 드라마, 소설, 방송 등 미디어를 통해 심리적 개념을 소비하는 현상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과 함께 부정적인 결과를 노출시키고 있다. 소비자가 미디어를 통해 긍정적인 감정이나 경험을 모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부 부정적인 감정이나 경험을 모방하여 사회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곤 한다. 바로 범죄를 소비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영화, 게임, 소설 등 미디어의 내용을 모방하는 범죄(Copycat crime)이다.

며칠 전 미국 콜로라도 한 극장에서 '다크 나이트 라이즈' 상영 중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했는데, 프랭크 밀러가 1986년 출간한 그래픽 노블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유사점이 있다고 하여 '배트맨' 만화책 시리즈의 모방범죄이라는 설이 제기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미디어 모방범죄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그 놈 목소리’라는 영화 모방 범죄 논란이 그것이다. '그놈 목소리'는 유괴 살해사건을 재조명해 '제2의 그놈'을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제작되었지만, 제작 의도와는 달리 또 다른 '그놈'을 만들어 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한 고교생이 '친구'란 영화를 보고 동급생을 살해한 사건과 한 청년이 집안에서 컴퓨터 게임에 탐닉하다 갑자기 살인 충동을 느껴 이웃 주민을 살해한 사건은 일종의 모방범죄라 할 수 있다.

이런 미디어 모방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은 분야별로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대안 중에는 논쟁의 중심에는 범죄를 유발할 수 있는 미디어콘텐츠를 규제하는 방안이 있다. 창작이나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문화콘텐츠를 생산하는 미디어의 다양성을 보장해야겠지만, 범죄를 유발하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제재가 필요한데, 그 선을 정하는 것이 어렵다. 특히 청소년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폭력적인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폭력성·음란성을 지닌 컴퓨터 게임 등은 흥미의 유발을 위하여 범죄의 수법을 세밀하게 묘사하거나 비행행동을 미화시킴으로써 잘못된 정보의 제공과 청소년의 가치관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 소비자의 관점에서 규제의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정보나 콘텐츠의 소비자라는 관점에서 미디어 모방범죄를 해결할 수 있는 소비자법과 정책 방안의 마련이 필요하다.

기존의 소비자법과 정책을 참조하면 우선적으로 위해물품과 동일하게 위해한 미디어콘텐츠에 대해서도 심의라는 사전규제와 함께 리콜이나 제조물책임이라는 사후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있다. 정보나 콘텐츠의 소비자라는 측면에서 제조물책임법의 정신을 반영하여 위해한 미디어콘텐츠에 대해서는 정보책임(Information liability)을 추궁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제3자가 모방하여 원고에게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텔레비전 네트워크, 영화 스튜디오, 잡지발행자, 비디오게임 제작자 등을 피고로 한 불법행위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허위·과장의 정보나 기만의 정보 등에 대한 행정규제나 민사규제와 같은 맥락에서 살인방법론을 서술한 도서의 저작자나 범죄를 유발한 위해콘텐츠의 미디어 즉 텔레비전, 영화, 비디오게임 등의 제작자, 저작자, 감독 등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이다. 물론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문제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글. 김성천 연구위원 (한국소비자원)

김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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