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점포의 영업품목과 영업시간 제한 등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재래시장 보호를 위한 대규모점포 규제’를 두고 벌써부터 각계각층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어 통과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대형유통업체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통한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이 공론화되고 있어 대형유통업체에 대한 규제가 현실화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시종 의원은 지난달 11일 대규모점포의 영업품목과 영업시간 제한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의원은 “정부 보고에 따르면 대형할인점의 적정 수는 200개에서 250개 수준인데, 2006년 말 현재 331개로 포화상태에 이른 반면 중소유통업체수는 지난 1996년 시장개방 이후 14만 개가 시장에서 사라졌을 만큼 심각한 위기 속의 강요받은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생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가 불가피하다”며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유통환경의 현대화와 재래시장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대형업체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전제로 재래시장 스스로도 경쟁 속에 변모하는 길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 의원이 제출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대규모점포의 영업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로 제한하고 월 3일 이상 4일 이하의 범위 내에서 의무적으로 휴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해당지역 재래시장에서 특화된 품목이나 민감품목에 대해서는 시·도 조례로 정해 탄력적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두고 관련 단체는 두 손 들어 환영하는 반면, 정부와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찬성 - 재래시장 살리려면 대형마트 규제해야.

김승훈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본부장은 “대형마트 설립이 무방비로 이뤄지고 있어 중소상인들이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있다”면서 유통산업 관련법 개정안의 국회통과를 촉구했다. 대기업과 중소상인은 시장논리로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형 마트 설립 기준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전국소상공업도우미협회, 전국시장상인연합회 등 40여 개 단체들은 대형마트 및 수퍼수퍼마켓(SSM)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비대위를 공식 출범하고 개정안 국회통과를 운동을 벌이고 있다.
임시 위원장을 맡은 김경배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지난 96년 유통분야가 개방되고 대기업들이 할인점 유통사업을 시작하면서 엄청난 자금력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기존 유통시장을 잠식해나갔다. 최근에는 SSM의 확산으로 재래시장 등 중소유통업체들의 매출이 급감하면서 연쇄 도산위기에 처해있다”며 고사위기에 처해있는 중소소상공인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재래시장 등 소상공인들이 직면한 위기는 준비되지 않은 유통개방과 대기업들의 비도덕적인 경영전략 때문이지 결코 소상공인들의 경쟁력 부족으로 인한 자연도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비대위 측은 계류 중인 대형점포 규제 관련 법안들을 신속히 통과시키는 것 외에도 △중소유통업 붕괴 비용 절감 상생법안 필요 △중소유통업을 위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실질적인 정책을 정부가 펴줄 것(대형유통업 해외시장 진출 적극적 지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최소한의 기업적 도덕성을 지킬 것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반대 - 실익 없이 대형마트 발목만 잡을 것

이수동(국민대 경영학과 교수) 한국프랜차이즈학회 회장은 개정안에 대해 “유통산업발전법이 재래시장에 기회를 주자는 것이지만 이것이 국회에서 통과돼도 실제 재래시장이나 재래시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실익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산업자원부도 “지난 96년 유통시장을 개방하면서 대규모 점포 개설과 영업활동 등에 대해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던 만큼 대형마트의 허가제 전환, 출점이나 영업 규제는 시장 제한을 금지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위배된다”면서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김성칠 산업자원부 유통물류팀장은 “중소상인 보호뿐 아니라 유통산업발전, 소비자후생, 국제규범조화 등 모든 부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중소상인만 보호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다만 중소상인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어서 재래시장 활성화, 공동물류창고 설립 지원, 영세 자영상인의 프랜차이즈 가입 유도 등을 통해 중소상인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한 분야가 취약하다고 다른 분야의 발목을 잡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편 국회가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정부로 하여금 대규모점포로 인한 재래 중소유통상인들의 피해와 종합구제대책을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것을 요구한 상황이어서 종합대책과 법 개정안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 의원은 “정부는 WTO 규정과 1996년 시장개방 당시 유통시장을 전면 개방했기 때문에 이러한 규제조치가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프랑스, 독일 등 유럽국가에서는 영업시간과 품목제한 외에도 입점허가까지도 제한하고 있다”며 개정안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재래시장과 대규모점포 상생의 길 모색해야

하나의 법안을 두고 한쪽에서는 재래시장과 대규모점포가 상생할 방안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대규모점포에 가해지는 위협일 뿐 재래시장 활성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분명한 것은 재래시장이 위기에 봉착했으며, 이 위기에서 벗어날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돌파구가 대규모점포에 대한 규제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한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 역시 “이런 규제가 실행된다면 대형 할인점들도 기업인데 할인점도 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이 값싼 제품을 구입할 기회를 빼앗아갈 수 있다”며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도매상을 키워 재래시장의 소매점을 지원하는 등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현재 재래시장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차시설 부족, 공중화장실 등 공공시설 부족, 극심한 가격차와 가격 미표기로 인한 불편 등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점포에 대한 규제만 가하는 것은 그야말로 ‘발목잡기’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대형할인점 규제가 현실화될 수 있을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류상근 기자 safe@safe119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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