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소방서에서는 다양한 ‘안전체험 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비상시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훈련에 노후된 소방장비와 안전관리 미흡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5월 17일 서울소방방재본부가 가족의 달인 5월을 맞아 가족단위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든 안전캠프에서 굴절형 고가 사다리차에 올라탔던 학부모 2명이 추락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가족-안전(Family-Safety)체험프로’로 이름 붙여진 이 캠프는 화재진압, 구조·구급 등 소방관들의 임무를 체험하고 화재 현장에서 탈출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위기 대체 능력을 키우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22개 서울시내 소방서별 책임 아래 사고가 발생한 중랑구 묵동 원묵초등학교를 비롯해 공원, 초등학교 등을 중심으로 시내 28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행사다.

안정장치 없이 진행된 안전체험

이날 사고가 난 차량은 봉 형태로 접혔다 펴지며 위로 올라가는 방식의 ‘굴절형’ 사다리차로 소방당국은 사다리와 바스켓을 연결하는 와이어 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바스켓이 뒤집혀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안전관리만 제대로 했어도 이같이 생명을 잃을 만한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장에는 바닥에 매트리스나 그물망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설치되지 않아 사고를 당한 학부모들은 몸을 봉에 부딪친 다음 딱딱한 바닥에 그대로 떨어져 부상이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 탑승시에는 안전요원이 함께 했지만 학부모들의 체험에는 안전요원은 물론 안전모 착용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소방방재본부 관계자는 “굴절 사다리차는 움직이는 반경이 넓어 매트리스를 깔 여건이 안 된다. 다른 곳에서도 매트리스를 깔아본 적이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구조상황에서의 사고는 이번만이 아니다. 2004년 3월 충남 서천군에 위치한 한 놀이동산에서도 공중에 선 채 고장난 기구의 탑승자를 구하기 위해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간 대원 두 명이 추락해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정지되어있던 놀이기구가 갑자기 움직이면서 사다리차에 충격을 주었고 사다리차는 장난감처럼 바스켓이 바로 꺾여졌다. 이때도 바닥에는 에어매트 한 장 깔려있지 않았다.

노후화된 소방차도 사고에 한몫 했다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떠오른 것은 훈련에 사용된 굴절차는 1998년 출시된 노후된 차량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사고의 원인이 되었던 와이어 줄은 출시 이후 단 한 번도 부품을 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장비의 노후화는 그동안도 많은 지적을 받은 부분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지난 해 까지 내구연한 7년을 넘긴 노후 소방차가 전체 6,546대 가운데 2,067대로 31.5%를 차지한다. 2000년에 조사한 20.8%보다 무려 10.7%나 상승한 수치이다.
굴절차 총 209대 가운데 20여 대는 이미 사용 가능 시한인 12년을 넘기고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방차량은 자체 하중도 대단하고, 시동을 걸자마자 출발하는 차량이다 보니 마모가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방차를 중소기업에서 만들다보니, 회사가 문을 닫아 버리면 부품조차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차량 역시 제조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소방서 측은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차의 노후율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소방차 교체 및 구입을 위해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하던 특별교부세가 지난해 폐지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 2004년에는 소방차 교체에 994억 원이 투자됐으나 지난해에는 35% 이상 줄어든 642억 원에 그쳤다. 소방방재청은 2010년까지 소방차 노후율을 19% 수준으로 낮춘다는 계획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일선에서는 노후화된 소방차의 사고는 어쩌면 예견된 일이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또한 이번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은 작은 에어매트 하나만 있었어도 이런 참극은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번 사고로 훈련을 지도했던 소방서의 서장이 해임됐고, 끊어진 와이어 줄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겨졌다. 또한 안전장비에 관한 필요성과 노후된 소방기기에 대한 심각성에 대한 관심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선조들의 말은 이런 상황에 쓰라고 만들어진 듯하다. 소를 잃었다. 너무나 고귀하고 안타까운 생명을 잃은 것이다. 이제 정신 차리고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제 2, 제 3의 소의 안전을 위해서 말이다.
소방안전체험에서의 안전사고라는 아이러니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차미경 기자 safe@safe119news.com

safe119  

<저작권자 © 주식회사 한국안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