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싱크대나,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던 ‘먹다 남은 약’들이 생태계 파괴는 물론 결국은 돌고 돌아 우리의 입속으로 다시 들어온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집안 거실 장식장과 책상 서랍을 열어보면 언젠가 먹다 남은 약봉지 한 두 개 정도는 굴러다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굴러다는 약의 대부분은 해열제와 감기약, 온갖 연고와 처방조제약 등이며, 이제는 사용기한도 효능도 알 수 없는 것이 대다수다.
그렇다면 이처럼 용도가 불분명한 약들의 처리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한국소비자원이 전국 300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61.3%가 그냥 버린다고 답했으며, 19.3%만이 약국에 문의하거나 인터넷으로 조회한다고 말했다.
또한 사용기한을 알 수 없는 의약품을 어떻게 처리하냐는 질문에 53.3%가 버린다고 답했으며, ‘사용하지 않고 보관한다’가 28.7%, ‘그냥 사용한다’는 18.0%로 나타났다.
<자료:한국소비자원, 전국 300가구 대상 설문조사>
문제는 ‘버린다’라고 답한 과반수 이상이 어떤 방법으로 약품을 버리고 있느냐에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럽은 싱크대에 쏟아 버리고, 알약과 조제약은 쓰레기 봉투에 싸서 내다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전문가들은 “무방비하게 버려진 약들은 여과 없이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 환경 재앙이 돼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대한 약사회가 서울 석수하수처리장·구리하수처리장·반포대교 남단 등 한강 본류와 지류 6곳의 물을 떠다 을지대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한강 물(방류수)에서 항생제와 향균제가 대거 검출됐다.
특히 콧물 감기, 중이염 환자 등에게 널리 사용되는 에리스로마이신(항생제)은 석수하수처리장에서 1L당 최고 125ng(나노그램)이 검출돼 환경 유해 기준(37ng, 독성학자들이 만든 국제 기준)을 세 배 이상 초과했을 뿐 아니라 탄천 침전지(42.8ng), 구리 하수처리장(29ng)도 기준을 초과했다. 가장 많이 검출된 항생제는 린코마이신이다. 이 약은 혐기성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로 흡입성 폐렴 등에 쓰인다.
관계자는 “하수처리장은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와 COD(화학적산소요구량) 정도만 관리할 뿐, 의약성분을 걸러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한 물에 흘려가는 약 뿐 아니라 쓰레기봉지 속으로 들어간 알약도 문제인데, 비가 오게 되면 쓰레기 매립장 침출수를 통해 지하수로, 다시 하천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쓰레기 처리는 70%가 매립형태로 이뤄지고 있고, 30%만이 소각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소각이 매립보다 안전하기는 하지만 소각 역시 대기 오염 물질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며, 의약품에 대해서는 일반소각이 아니라 고온의 ‘유해폐기물 소각 시스템’을 통해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캐나다의 연구보고에 따르면 피임약 등으로 쓰이는 호르몬제를 미량 (농도 5ppt) 풀었을 때 3년 만에 송사리류의 번식이 중단되는 등 하천으로의 약물 투입이 생태계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이 환경단체의 입장이다.
문제는 생태계 파괴라는 1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하천으로 흘러간 약 성분이 다시 가정으로 귀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구리하수처리장의 경우 이곳에서 처리한 방류수는 한강으로 흘러 들어와 잠실 수중보 상류에서 식수로 취수된다. 정수장에서 고도 정수 처리를 하지 않는 이상 약품이 완벽하게 제거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해외에서는 음용수에서 의약품 성분이 검출되기도 했다면서 “극미량인 약 성분을 검사나 정수 과정에서 걸러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정밀 검사를 하기 전에는 수돗물에 약성분이 없다고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약사들이 자체적으로 폐의약품 수거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2007년 들어서야 서울에서 시범실시에 들어간 상태다.
서울은 이를 통해 지난해 9,400kg을 수거했으며, 작년부터는 주요 광역시로 시범실시를 확대하고 있다. 집에 있는 약을 가지고 가면 약사가 복용 가능한 약과 폐기해야 할 약을 구분해, 폐기약은 별도로 수거함에 보관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홍보부족과 약국으로 가져다 준 약의 이후의 폐기상태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없어, 국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운동 전문가들은 무분별로 버려지는 의약품으로 인해 생태계가 교란되고 결국은 인간에게도 큰 피해가 돌아온다며, 가정 내 폐의약품도 쓰레기 종량제와 같이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건강을 위해 복용한 약이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다. 폐의약품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와 체계적인 대안이 필요할 때다.

글 | 차미경 기자 chamk@safe119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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