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해양부는 보행의 편의와 심리적 안정, 그리고 국제 관행을 고려해 지하철, 철도, 공항 등 공공장소의 통행방향을 우측보행으로 바꿨다.
그러나 체계적인 준비 없이 진행된 우측보행으로 일반 시민들은 물론, 시각장애인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어 문제가 되고 있다.  


<사례>

* 친구들과 함께 역으로 들어가던 A씨는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다 발을 헛디뎌 부상을 당했다. 습관처럼 이용하던 방향으로 발을 내딛었으나 바뀐 계단을 미처 확인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였다.

* 시각장애인 B씨는 병원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했고 평소와 같이 왼쪽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다가 운행방향이 바뀐 계단을 밟고 앞으로 넘어져 크게 다칠 뻔 했다.
  시각장애인은 유도 점자블럭을 이용해 방향을 감지하지만, 이에 대한 시설이 아직까지 좌측을 향해있기 때문이었다.
  B씨는 “시설이 부족하다면 안내원이라도 배치해야 한다”고 전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도심의 지하철 계단, 에스컬레이터, 공공시설에서 우측보행 관련 포스터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이는 국토해양부(장관 정종환)가 지난 10월 1일을 시작으로 보행자의 안전 및 글로벌 보행문화 정착을 위한 보행문화개선계획의 일환으로 지하철·철도·공항 등 다중이용 교통시설 및 공공기관에서 우측보행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우측보행을 시행하면 보행자와 보행자 사이에 마찰이 줄어들고 인체는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으며, 넓게는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다고 국토해양부는 전하고 있다.
또 교통사고의 20% 감소로 연간 사망자 약 70명, 부상자 1천7백 명, 인적 피해비용 711억 원, 심리적 피해비용 734억 원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우측의 장점과 편의를 주장하며 본격적으로 우측보행을 시행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도 안전사고 위험이 큰 에스컬레이터의 운행 방향을 우측에 맞게 전환하는 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수도권 지하철 1~8호선 역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모두 1,033대이지만, 이 중 9월 말까지 675대(65%)만이 운행방향을 바꿔 미 전환 분은 358대에 이른다. 이 중 1~4호선에 설치돼 있는 62대는 운행방향을 바꾸기 힘든 구형 모델로 내년 6월까지 모두 신형으로 교체될 예정이지만, 공사 대상 중에는 충정로역, 충무로역, 고속터미널역 등 환승역이 많아 혼잡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또 5~8호선 296대는 설계구조 변경이 어렵다는 이유로 좌측통행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시민들은 매일같이 이용하는 지하철 승강기에 대해 혼란과 불편을 겪고 있고, 자칫 안전사고까지 염려되는 실정이다.

시각장애인, 우측보행 혼란 가중

우측보행으로 인한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은 더욱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통행 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유도 점자블록의 도움을 받아 안전한 보행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우측보행이 시작된 현재, 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시각장애인 유도 점자블록은 여전히 좌측보행에 맞게 그려져 있거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보행자의 안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우측보행을 하는 일반 보행자와 충돌의 우려도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실제로 광주지하철 상무역 2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시각장애인 점자블록은 좌측보행으로 시각장애인을 유도한 후 우측보행 개찰구에서 나오는 일반인과 마주치도록 설치돼 있다.
또 서구 양동시장역 엘리베이터 앞 통로 역시 점자블록은 좌측보행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다 보행로마저 좁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우측보행하는 일반인과 부딪힐 확률이 높다.
이밖에도 점자 포스터 등 홍보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물론, 에스컬레이터의 위치와 진행 방향을 알려주는 음성유도기 안내방송 내용을 고치지 않아 사고를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안전의 위협과 보행의 불편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광주시 도시철도공사는 우측보행 시설개선에 사용할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설 교체 내용을 시설정비계획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계단 없이 에스컬레이터만 설치된 역도 상당수인 현실을 도외시한 생각”이라며, “시각장애인은 지형·지물을 익혀 정해진 길로만 다니는 만큼 에스컬레이터 주변 등에 안내원을 배치해 안전 보행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측보행 제도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시행되는 것이긴 하나 아직까지 시설 면에서 미흡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에 정부는 더욱 섬세한 대책으로 일반인과 장애인 모두의 편의를 고려하는 선진화 된 제도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글| 장진희 기자 jjh7060@safe119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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