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 공감하지만 효과는 ‘글쎄’
지난 10월 1일부터 ‘의약품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가 시행됐다.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병원·약국 등 요양기관이 의약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면 그 금전적 혜택을 요양기관과 환자가 공유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공단에서 상한금액을 1000원으로 책정한 A약품을 요양기관이 800원에 구입하면, 차액의 70%인 140원은 요양기관에 인센티브로 제공하고 나머지 30%인 60원은 환자부담금에서 경감해주는 방식이다. 보건복지부는 “의약품 가격을 결정할 때 요양기관의 거래가격을 반영하므로 점차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절감되고 국민들의 약품비 부담이 경감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제약산업이 불법 리베이트 중심의 영업경쟁 구조에서 R&D 중심의 제품경쟁 구조로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의약계에서는 시장형 실거래가제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제도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저가구매를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춘 현행 방식은 결과적으로 국내 의약품 시장에 혼란만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시장형 실거래가제 시행 이후 일부 병원에서는 의약품 입찰 과정에서 대규모 유찰 사태가 발생했다. ‘1원 낙찰’이라는 기현상이 연출되기도 했다.

저가구매 인센티브의 한계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기존 ‘실거래가 상환제도’를 수정한 것이다. 의약품 구입 가격을 신고할 때 대부분의 병원·약국이 실제 구입 가격과 무관하게 정부가 정한 상한금액으로 신고하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의약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저가구매 인센티브는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정부에서 책정하는 상한금액은 말 그대로 ‘판매가격의 법정 최고치’이지만, 지금까지 병원·약국은 정부 상한금액이 1000원인 A약품을 800원에 구입하더라도 1000원으로 신고해왔다. 이미 구입 금액과 신고 금액에서 차액이 발생해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약회사들이 서로 자사 제품을 처방해달라며 ‘뒷돈’까지 주고 있다. 그런데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A약품 구입 가격을 800원으로 신고했을 때 차액의 70%(140원)만 인센티브로 받게 된다. 더군다나 다음해에는 실제 구입 가격을 반영해 A약품의 상한금액이 하향 조정되기 때문에 저가구매 인센티브는 해가 갈수록 금액이 줄어 결국 ‘0’이 되고 말 것이다. 의약품 가격이 낮아지면 제약회사의 영업이익이 감소해 ‘뒷돈’ 역시 감소할 수밖에 없다. 병원, 약국, 제약사 입장에서는 썩 내키지 않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저가구매 인센티브는 환자에게도 득보다 실이 많은 제도다. 가격 할인 여지가 큰 고가의 의약품을 처방해야 병원·약국이 인센티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약품의 특성상 병원·약국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네릭(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카피약) 대신 값비싼 오리지널 의약품을 처방하면 환자는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인센티브라는 ‘합법적인 리베이트’ 때문에 환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약이 아닌 병원·약국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약을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희생’아닌 ‘공생’모색해야
시장형 실거래가제가 당초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자 병원협회, 제약협회, 약사협회 등 관련 단체에서는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건강보험의 안정적 운영과 국민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모한 출혈경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지만, 그들 스스로가 시장형 실거래가제로 인한 피해를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해서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건 제도 개선 요구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기세다.
문제는 정부가 인센티브를 미끼로 병원·약국·제약사의 경제적 희생-실제로는 더 이상 불법적인 이득을 취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희생이라고 생각할 만한-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그들은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 환자에게 비용부담을 떠넘길 것이다. 의약계의 불법 리베이트 관행을 개혁할 필요는 있지만 병원과 약국, 제약사가 서로의 살을 갉아내기를 바라는 현 시장형 실거래가제의 수혜자는 오로지 정부뿐이다.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시킨다는 이유로 관련 업계와 환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셈이다. 지금 의약계가 겪는 갈등이 제도 시행 초기의 일시적인 혼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관련 업계의 참여 동기가 부족하고 효과적인 유인책도 없다. 근본적인 장애를 안고 있는 것이다.
시장형 실거래가제의 문제점이 현실로 드러나면서 관련 업계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과연 이들이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정부와의 협의를 어떻게 이끌어낼지 궁금하다. 이번에는 자신의 손실보전을 위해 다른 이의 손실을 조장하는 방법이 아니길 기대해본다. 새로운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희생’이 아닌 ‘공생’을 전제로 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_ 김수희 기자 crche@safe119news.com

김상진 기자  safe@119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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