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안전 위해 적극적 예산집행 필요


지난 8월 소방방재청은 일선 소방공무원의 안전한 현장 활동 지원과 건강위해 요인의 제거를 위하여 ‘호흡용 공기의 품질기준’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관련고시를 일부 개정한다고 밝혔다.
현장 소방대원들을 배려하겠다는 이기환 소방방재청장의 의지를 보여주는 변화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장비는 노후됐으며, 심지어 초과근무 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소송까지 불사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소방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홍수와 화재 및 각종 위급 상황들.
그 많은 상황에서 국민을 지켜주고 있는 주체는 정작 누구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제 정부와 지자체는, 협의의 의미로는 소방공무원들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나아가서는 국민생활안전을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우선적으로 소방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해야 할 것이다.
Fast in, Last out
위 사진은 지난 2001년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우연히 찍힌 사진이다. 그날은 바로 전 세계인들이 경악했던 세계 최대의 테러사건이 발생한 9월 11일이었다.
비행기를 이용한 대규모 폭파 테러로 인해 세계무역센터 건물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모두가 대피하기 위해 층계를 이용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가 살기위해 내려가고 있을 때 반대로 올라오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소방대원이었다. 어찌보면 이 한 장의 사진이야말로 소방관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경험상 그 건물의 붕괴위험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위험을 무릅쓰고 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사명감일 것이다. 자신의 목숨과 안위보다 타인의 안전과 생명을 먼저 생각하고 사지(死地)로 뛰어들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을 이루는 사명감. 덕분에 우리는 숱한 위기 속에서 구조의 손길을 잡을 수 있고 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소방공무원들의 안전관리는 타 직업군에 비해 더욱 세심하고 조심스레 관리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안전사고가 남기는 상처
태풍을 비롯한 지진이나 홍수,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는 물론 화재, 교통사고, 산업사고, 전쟁 등 끊임없는 인명 및 재산피해는 해마다 끊이지 않고 있다. 산업과 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비상 시 대형사고를 야기시키는 역기능도 그만큼 커지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만큼 구조, 구급 및 화재진압 등 소방업무의 양도 대폭 늘어가게 되었다.
이처럼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소방공무원의 안전사고 발생율도 그만큼 증가하게 되었다.
소방관에게 있어 안전사고란 단순한 사고의 범주를 넘어선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소방관들의 심리와 정서 때문이다. 소방관들의 구조활동은 단순한 직업의식에서 발로된 것이 아닌 타인의 생명을 구하려는 사명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사고의 후유증은 육체적인 불편함이나 고통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찌보면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인 피해일 것이다.
어릴 적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사람이 수영을 즐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개한테 크게 물려본 사람이 개를 키우기 역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오토바이를 타던 친구가 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것도 비슷한 예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봤을 때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PTSD)는 심도있게 다뤄져야 할 문제 중 하나다.
1980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는 PTSD의 진단을 위해서는 외상사건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며  외상사건을 겪은 후 나타날 수 있는 일련의 특징적 증상군-즉 외상사건에 노출된 후 그 사건을 지속적으로 재경험하고, 그 사건과 연관된 자극에 대한 지속적인 회피와 외상사건 전에는 없었던 과각성 등의 증상-등의 조합을 PTSD라고 정의했다.
PTSD라는 진단이 채택되기 전, 사람은 스트레스가 주는 영향으로부터 되돌아 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기본 개념이었다. 어떤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사람은 그 스트레스에 대하여 어떤 형식으로든 대처하고 적응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외부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증상도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스트레스 유발요인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각 증상들)이 지속되는 것은 개인의 신경증적 경향이나 개인의 약점이 있음을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난 후 나타나는 스트레스 관련 증후군의 진단이 필요하다는 필요성이 정신의학계 내에서 재기되어 왔고 스트레스를 겪고 난 후 지속되는 증상들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일어났다. 즉 이러한 증상들은 개인적인 약점이나 체질적 결함을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심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사건 그 자체가 원인이라고 보게 된 것이다.
특히 소방관 직무와 관련하여 PTSD를 보는 관점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2002년 3월 1일 미국 버지니아주 최고법원은 소방관 Mottram에게, 반복된 직무상 스트레스에 의해서도 PTSD가 발병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소방관이자 구급대원으로 일했던 Mottram은 여러 끔찍한 사고 현장에 출동했고 화재진압에도 참여했다. 그는 처음 10년 정도는 하루 평균 12회 정도의 응급호출을 받았고, 그 후 행정책임자로 승진을 했지만 구급요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매 2개월에 한 번 24시간 교대근무를 했다. 이 근무기간 중 한명이 죽고 여러 명이 심하게 화상을 입은 화재 사건에 출동하게 되었고 이 사건은 Mottram이 예전에 경험했던 일가족 6인이 사망한 화재사건을 연상시켰으며 이후 본격적으로 심한  PTSD 증상이 나타났다. 병가를 내면서 그는 자신의 PTSD에 대한 보상을 신청하였고 법원은 이에 대해 반복적인 스트레스 누적에 의해서도 PTSD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정했고 Mottram의 PTSD는 직업병임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직업적으로 늘 외상사건에 노출되는 소방관들은 직업관련 스트레스가 높은 직업군으로 우울증, 불안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의 유병률이 높다.
연구자료에 따르면 △임무 수행 중 동료의 사망 △소방관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 △자신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느낀 사건 △대량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의 경우 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현장 안전사고의 경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이러한 스트레스가 반복될 경우 직업 만족도 저하를 비롯해 잦은 결근 및 조기은퇴까지 이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만일 이처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위급한 구급현장 활동을 할 경우, 구조자와 구조대원의 안전에 대한 보장은 그렇지 않을 경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결국 질 높은 소방행정 서비스를 위해서는 소방공무원들의 안전사고 방지 대책 및 PTSD치료 등은 필수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대책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소방공무원들의 공·사상자를 살펴보면 현장 활동 중 안전사고자 1,082명 중 순직 20명, 공상 1,062명이 발생했다. 유형별로는 화재현장 활동 중 발생한 사고가 401명(25.6%)로 가장 많았고 구급현장 활동 중 발생한 사고가 328명(20.6%)로 뒤를 이었다.
이 결과를 볼 때 안전사고는 단순한 한 가지의 문제점을 해결한다고 해서 근본적 원인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제도와 직무환경 및 예방의식 등의 유기적 보완이 이뤄져야 효과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역시 인력부족에 관한 부분이다. 현재 소방력의 수요에 비해 소방인력은 현저히 적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예산과 관련되어 있어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의지 없이는 개선이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소방행정 서비스에 가장 큰 저해 요인이 인력부족인 만큼 법령의 개선을 통해서 인력의 확충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또한 현장안전관리 전담부서의 신설과 담당자의 배치를 통해 안전관리 분야에 대해 집중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안전관리 담당부서와 담당자가 지정되어 있지만 막상 담당하는 본연의 업무 외에 추가적으로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고유성과 연속성 및 전문성이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연구기관 신설 또는 강화, 전담부서 신설 및 안전관리 담당자 배치를 통해 안전사고 방지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강의식 위주로 진행되는 실기·실습 훈련을 대형상가나 아파트 등 지역특성에 맞는 모의시설 등을 통해 현장 활동 시 상황을 예지하여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훈련시설을 통한 교육으로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
이 밖에도 노후 장비의 교체도 필수적이 개선부분이다.
내구연한이 지난 장비로 인해 소방관들이 순직하고 다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소방공무원 개개인에 대해 심리적, 육체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심리적, 육체적 안정없이 효과적인 팀웍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같은 개선을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력의 충원이건 장비의 교체건 간에 집행을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흔하디 흔한 정부와 지자체의 레퍼토리는 예산부족이다. 국민을 지키는 일에 예산이 우선적으로 집행이 안된다면 그것이 어찌 국민을 위한 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재난으로부터의 구급 구조는 국민안전과 가장 밀접하게 직결되어 있는 부분이다.
국민이 내는 세금에는 국가 안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분명하게 포함되어 있다. 내가 내는 세금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민을 위한 예산으로서의 세금이 아닌 말 그대로 혈세(血稅)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는 보다 적극적으로 소방 관련 예산을 편성·집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소방공무원 개개인의 안전사고 예방에 대한 의식의 확립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제도와 법령이 아무리 훌륭해도 현장에서 이를 운용하고 실천하는 소방공무원 자신이 안전사고예방에 대한 인식이 습관화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은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따라서 국가는 국민들의 행복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국민의 안전과 가장 밀접한 소방관들의 안전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소방관의 안전은 국민의 행복

지난 2006년 11월 부산 금정구 서동 가스폭발 사고 당시 정년을 한 달여 앞두고 가스폭발 사고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펼치다 “건물 안에 사람이 더 있다”는 주민의 말을 듣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으나 갑자기 건물 전체가 무너지는 바람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순직한 고 서병길 소방위.
그가 생전에 한 말은 소방관의 모든 것을 나타내준다.
“생명을 구할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제 한 목숨 버려 한 생명 구하는 것이 소방관이다.”
매년 발생하는 소방공무원들의 순직과 공상, 그리고 그로 인한 심리적 장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길 속으로 다시 뛰어드는 소방관들에 대해 국가는 반드시 성의있는 세이프 라인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김민정 기자  safe@119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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