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침해로 인한 진정·상담이 늘고 있다. 특히 구금시설과 다수인보호시설에서의 진정이 2배 가까이 폭증했다. 진정 사유로는 신분·장애·성별 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가장 많았고,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과 성희롱 진정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인권에 대한 의식은 빠른 속도로 향상되고 있는 반면, 인권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아직도 한 발 뒤쳐진 상태로 정체해 문제가 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 건수가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지난해까지 접수된 진정사건은 총 28,854건으로, 단순한 안내·민원을 제외한 진정·상담의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전년 대비 각각 49.84%, 24.68%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침해사건 피진정기관으로는 구금시설이 43.2% (9,981건)로 가장 많았고, △경찰 22%(5,077건) △정부 부처 등 국가기관 14%(3,233건) △다수인보호시설 5.3%(1,226건) △검찰 5.3%(1,215건) △초·중·고등학교를 포함한 지방자치단체 4.7%(1,080건) 순으로 뒤를 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다수인보호시설 관련 진정이 2배 이상 폭증했는데, 그동안 인권사각지대로 알려진 정신병원 등 관련 시설 수용자와 그 가족들의 인권의식이 향상된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두 번째로 진정 건수가 많았던 차별사건의 경우 사회적 신분 차별이 20.2%(809건)로 가장 많았고, 장애로 인한 차별 14.6%(548건), 나이에 의한 차별 8.8%(351건), 성희롱 8.3%(332건) 등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병력을 이유로 한 차별과 성희롱 진정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부족

인권침해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진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가중된다.
경상북도의 한 정신병원에서는 정신지체 등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거동이 불편한 여성 환자를 씻길 때 전문 헬퍼가 아닌 남성 입원환자를 동원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알콜의존증으로 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P씨는 “내가 입원한 병실은 주로 알콜중독인 남자 환자들이 생활하는 병동이었는데, 가끔 직원들이 ‘심심할 텐데 아래에서 여자 환자들 목욕시키고 있으니 한 번 봐라’라는 식의 얘기를 스스럼없이 한다”며 “정신병원, 그중에서도 특히 폐쇄병동은 일반인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곳”이라고 말했다.

자기 자신도 이 같은 행태를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진 믿을 수 없었다는 P씨는 여성 환자의 목욕과 대소변 받기 외에도 헬퍼들이 임의로 환자를 강박하는 등 정신병원의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임에도 정부에서는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며 관련 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정부 보조금을 목적으로 한 강제입원과 외부와의 의사소통 차단 등 그동안 부각됐던 정신병원 등 다수인보호시설의 문제점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정신병원뿐만 아니라 일반 어린이보호시설, 노인요양시설 등에서도 심각한 차별과 학대가 이뤄지고 있다. 종교단체에서 활동하는 K씨는 인천의 한 보육기관을 방문했다가 어떤 아이들에게는 친절하고 어떤 아이들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직원을 보고 해당 시설에 개선을 요구했지만 자신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K씨는 “이곳은 부모가 경제활동을 하느라 맡기고 간 아이들도 있고, 버려진 아이들도 있다. 부모가 없는 경우는 말을 안 들으면 때리기도 하고 벌을 심하게 세우기도 하지만 정부에서 감독을 나올 땐 태도가 싹 바뀌어서 어쩔 도리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인권침해는 정신병원을 비롯한 보호시설, 교도소 등 우회적인 상하관계가 형성되는 기관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이는 기본적인 평등의식 부족에서 비롯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교과서적인 논리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단지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기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이유로 차별받을 이유는 없다. 또한 황금만능주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어떤 명분으로도 경제성을 목적으로 한 ‘인권장사’는 합리화할 수 없다.

그럼에도 현실에서의 인권은 때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링컨(Abraham Lincoln) 이 집권을 위해, 또 미국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 ‘노예 해방’이라는 정치적 카드를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60주년을 계기로 한 번쯤 우리가 사회적 약자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인권의 양극화’라는 이 기형적인 현실이 하루빨리 개선되기를 기대해본다.

최봉기 부장

담당자  wnes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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