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능 장애·암 등 유발…피해사례 수집 등 관련 연구 필요

최근 플라스틱 젖병에서 검출된 비스페놀A가 내분비계에 이상을 일으킴은 물론 암을 일으킬 수도 있는 환경호르몬이라는 미국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덕분에 요즘 마트에서는 ‘환경호르몬 제로 젖병’이 유행이다. 10여년 전 논의되던 환경호르몬이 이제 우리 삶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다는 방증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환경호르몬이 우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으며, 생각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환경호르몬, 우리는 여기에 어디까지 대처할 수 있을까?

호르몬을 교란시키는 환경호르몬

‘서·남해안 수컷 숭어 10% 암컷으로 변화, 붕어 8%는 암수가 혼재하는 자웅동체, 남아신생아 기형 성기 10년 새 7배 증가, 20대 남성정자 운동성 50% 이하로 비정상’

최근 국립환경과학원, 식품의약품안전청, 각 대학 등에서 나온 연구결과들인데 모두 환경호르몬에 의한 것이다. 각종 화학 물질과 중금속에 대한 오염이 심각해짐에 따라 환경호르몬에 대한 관심이 높다. 환경호르몬은 증세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고, 다음 세대에도 전이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광범위한 피해 사례는 물론 우리 인체의 영향 정도에 대한 연구가 어렵다.

환경호르몬은 내분비계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고, 생체 내 항상성 유지와 성장발육을 조절하는 호르몬의 생산과 작용기전 등을 교란시키는 화학물질을 말한다. ‘환경호르몬’이라는 이름도 화학물질이 동물이나 인체에 유입돼 호르몬처럼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다이옥신, PCB, PAH, 푸란, 페놀, DDT와 같은 살충제 등이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이다.

성기능 이상에 영향

환경호르몬의 가장 큰 영향 가운데 하나는 성기능 저하다. 최근 가임부부의 20% 이상이 불임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는 95년 이후 십년만에 두배 오른 수치다. 물론 피임약의 장기 복용, 늦은 결혼 등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환경호르몬에 의한 영향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한 여성의 생리통 증가, 유방암 환자의 급격한 증가 등도 환경호르몬에 의한 영향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수도권 중고등학교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생리통으로 고통받는 여학생들이 환경호르몬 유해물질에서 멀어지자 생리통이 사라지는 결과가 나오는가 하면, 환경호르몬 중에는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물질들이 많아 자궁내막증과 같은 부인과 질환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화학제품이 상용화된 1940년대부터 유방암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결과도 최근 나온바 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각종 호르몬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공단지역 남자 어린이들이 생식기 기형을 안고 태어나는 비율이 청정지역 남자 어린이들보다 최고 30배 가량 높고, 성인 남성 정자의 질도 훨씬 낮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도 눈여겨 불만하다.

성기가 함몰된 수컷 퓨마, 성별이 변형된 각종 물고기 등에 대한 보고가 속속 나오고 있는데 우리 인간에게도 언제 이러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는 환경호르몬

이러한 이유로 이미 많은 국가에서 환경호르몬 물질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연구는 물론 대처 방안 등을 강구하고 있다.

OECD에서 환경호르몬 문제에 대한 국제회의를 1998년에 개최한 이래 UNEP는 ‘환경오염물질규제조약’ 협상을 시작해 환경호르몬 규제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의약품, 식품첨가물 등의 142종의 물질을 환경호르몬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으며, 126억 엔을 투자해 연구와 대체물질 개발 등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EPA를 중심으로 환경호르몬 물질을 관리하고 있으며, 1996년 발족한 '환경호르몬 선별 및 검사 자문위원회'에서 대체물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관련 기관 및 전문가로 구성된 ‘내분비계장애물질대책협의회’ 회의를 통한 환경호르몬 3단계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환경호르몬 규제 강화돼야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경호르몬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별로 없다. 환경호르몬 위험이 있는 제품에 대한 규제는 반대로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규제와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통과된 ‘환경보건법’은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당초 입법예고안보다 환경호르몬에 대한 규제 정도가 완화돼 제정됐다.

유해성·위해성의 기준을 초과하는 상품에 대해서는 고시로 당해 제품의 유해물질 사용을 제한, 금지하도록 한 내용도 대폭 삭제됐다. 심지어 건강에 중대하고 급박한 위해를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는 제품에 대한 판매 중지·회수의 권고·명령 규정은 ‘회수를 권고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즉 제품이 설사 환경호르몬을 배출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에 대한 강제 조치가 어려운 것이다.
또한 환경호르몬에 대한 기준 마련도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다. 각종 환경호르몬의 허용 수치는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물론, 이에 대한 기반 연구도 아직 미비한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아직 피해 사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환경호르몬에 대한 우려가 온전히 소비자들의 몫으로만 남지 않도록 관련 당국의 보다 큰 관심과 대책이 요구된다.

김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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