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수 서초소방서장

유명수 서장이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것은 “보이는 봉사, 습관화 된 배양된 봉사는 진정한 봉사가 아니다. 선천적 봉사정신을 갖는 것이 진정한 봉사”라는 말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가장 참된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봉사의 기본 정신이라고 강조하는 유명수 서장의 모습에 소방에 대한 신뢰의 벽이 한 단계 두터워졌다.

소방의 길로 들어선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 또한 경영학을 전공하셨던데 실무경험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나요?

소방에 입문하게 된 것은 어떤 운명적인 이끌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저보다 2년 먼저 소방관이 됐던 친형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나아갈 길도 이 곳이구나’ 라는 숙명적인 무언가를 느끼게 된 거죠.
그렇게 소방에 입문해 3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궁극적으로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소방관은 목숨을 걸고 일합니다. 재해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지요. 이때 현장으로 같이 들어가는 사람이 동료이기 때문에 다른 공무원은 못 느끼는 감회를 갖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 ‘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도 중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만일 둘 중 한 사람이 죽어야 할 상황이라면 ‘나는 당신을 위해 기꺼이 죽겠습니다’라고 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또한 1999년도에 서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동안의 실무경험에 이론적인 면을 더하고자, 광운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에 등록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석학들로부터 주옥같은 강의를 들었지요. 리더십과 사회현상에 관한 강의를 관심 있게 들으며, 실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덕분에 조직 관리를 하는 데 이론적인 틀을 갖추고, 인격을 수양하고 평생 배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시아 소방장 대회’와 ‘세계소방관 경기대회’ 등 이색경험을 하셨던데, 경험담을 말씀해 주세요.

1984년 1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13차 아시아 소방장 대회’와 1992년 5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2회 세계소방관 경기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습니다.
잘은 못하지만 무역회사에 근무할 때 틈틈이 익힌 영어 덕분에 당시만 해도 흔치 않던 해외출장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아시아 소방장 대회’는 아시아 각국 소방기관장 간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정보교류를 위해 개최되는 국제회의인데, 올해도 일본에서 개최될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내무부 소방국장으로 재직하시던 김대양 국장님, 한금종 본부장님을 모시고 참가했는데, 두 분 모두 한참 후배였던 저를 많이 배려해주셨어요. 회의는 환영리셉션, 개회식, 기조연설, 주제발표, 현장견학, 송별만찬의 순서로 진행됐는데 우리가 기조연설을 맡게 됐죠. 우리나라 소방을 대표해서 기조연설을 하는 것인 만큼 자료작성부터 스피치까지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회의 공식 언어인 영어로 원고를 작성해서 주어진 15분 동안 스피치 연습을 끊임없이 반복했었죠. 반복연습에 참석자들의 관심이 더해져 성공적으로 기조연설을 마칠 수 있었어요. 마지막 날 송별만찬에서 필리핀 전통 음악 공연이 있었는데, 마닐라의 열대기후와 독특한 선율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에 젖어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네요.
92년도에 선수단 부단장으로 참가했던 ‘제2회 세계소방관 경기대회’는 우리나라 소방에서 처음으로 참가했던 국제 체육행사였습니다. 당시 22개국 4,000여 명이 참가하는 큰 규모의 행사였는데, 2010년 우리나라 대구에서 개최하게 된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그 당시 우리나라는 탁구, 테니스, 유도 3종목에 18명의 선수가 출전해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따내는 성적을 올렸습니다.
세계소방관 경기대회는 성적보다 각국 소방관들 간의 우호증진에 목적이 있는 행사지만, 처음 참가하는 대회에서 우리나라 소방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선수들 모두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던 기억이 나네요.
2010년 대구에서 개최되는 제11회 대회에서는 개최국인 만큼 더 좋은 성적을 올리고 성공적인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위에서 말씀하셨듯 세계 많은 대회를 참가하면서 다양한 소방시스템과 소방관들을 접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세계 소방과 우리나라의 소방을 비교해 봤을 때 다른 점은 무엇이며, 벤치마킹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다른 나라 소방시스템을 접하거나 소방관을 만나보면 같은 길을 걷는 직업인으로서 다른 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우리 소방이 배울 점도 자연스럽게 눈에 띄곤 하는데, 그런 면에서 두 가지를 들고 싶습니다.
먼저 국제협력에 대한 마인드입니다. 지금은 세계화·글로벌시대로 전 지구가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습니다. 거미집에 돌을 던지면 전체가 흔들리다 끊어지듯이 어느 한 장소에서 발생한 대형 재난사고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때문에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고 관심을 갖고 지켜봅니다. 또 지식·정보·지혜까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죠. 따라서 우리만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곤란하며, 국제협력을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국제 행사에 참가해 보면 세련된 매너와 외국어 구사능력을 갖춘 다른 나라 소방관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같은 아시아권에서도 싱가포르나 홍콩소방을 예로 들 수 있지요. 그리고 선진국 소방 대부분이 국제협력업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담부서를 두고 장기적인 목표와 계획을 세워놓고 지속적으로 다른 나라 소방과 교류해 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글로벌경쟁시대에 적극적인 자세로 뛰어들어 다른 나라 소방기관을 방문해 비교행정도 연구하고, 재난예방·진압정보도 공유하고, 벤치마킹도 해야 합니다. 우리 소방이 그동안 눈부신 발전을 해왔습니다만 국제 협력에 대한 마인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좀 더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협력을 단순히 외국에 나가본다는 단발성의 부수적인 업무로 다룰 것이 아니고 우리 소방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디딤돌로 활용하는 전략적인 사고와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오래 전부터 얘기했지만 92년도에 세계소방관 경기대회를 위해 미국에 갔을 때 그들의 실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어떤 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판단이 항상 현장을 기준으로 내려지는 현장중심주의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소방은 조금 경직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두 나라의 역사적 전통이 달라서 생긴 차이겠지만, 계급제와 관료제의 전통이 강한 우리 소방에 이러한 현장중심의 시각이 더해진다면 조직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 서초소방서에서는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해소를 위한 특별교육을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설명과 소방관의 ‘PTSD’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며, 이를 위해 어떠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최근 관심이 높아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전쟁, 화재, 폭행 등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입니다.
1980년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 처음 인정된 이래 주로 참전 군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진행돼오다가 9.11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생존자 112명 중 절반에 가까운 64명에게서 PTSD 증상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었으며, 원묵초등학교 사고와 관련해서 학생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료 지원 및 상담프로그램을 운영한 사례가 있습니다.
언젠가 해외 소방잡지에서 쿠웨이트 소방당국이 PTSD관리프로그램을 도입하려 한다는 기사를 읽고 우리도 여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숱한 현장을 누벼온 제 경험에 비춰 보더라도 재난현장을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소방관에 대한 PTSD 관리프로그램 도입은 늦은 감이 있을 정도로 필수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 서초소방서도 작년 상·하반기에 한 번씩 2회에 걸쳐 외래강사를 초빙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해소를 위한 특별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직원들의 관심과 호응도 높았고, 무엇보다 직원 개인차원의 문제로 생각돼 오던 PTSD를 공론화시킨 계기가 됐어요. PTSD는 초기에 동료들과의 대화나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자신의 증상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동료들과 상사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전문가의 상담을 정기화하는 등 프로그램 운영을 시스템화하는 작업이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안전 분야의 권위자로서 이제 막 소방에 입문한 후배들과, 소방분야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분들, 그리고 국민여러분께 안전한 삶을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소방공무원은 진정한 봉사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진정한 봉사는 하나의 감응(Respons)입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소방관은 이 상황에 감응합니다. 진정한 봉사는 항상 새롭습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우리 가슴의 에너지가 그쪽으로 흘러갑니다. 아이가 넘어진 것을 보면 우리는 얼른 달려가 아이를 일으켜 세우죠. 이것이 감응입니다. 그렇지만 거짓된 봉사, 계발된 봉사, 인위적으로 배양된 봉사는 반응(Reaction)입니다. 진정한 봉사를 해야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소방공무원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감응은 살아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반응은 깊이 물든 습관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넘어진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달려가 도와줍니다. 하지만 여기엔 가슴이 없습니다. 누군가 물에 빠지면 우리는 뛰어들어 도와줍니다. 그렇게 하도록 배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을 도와주는 습관을 키워왔습니다. 우리 자신은 이 일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은 외부인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황에 감응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물에 빠진 이 사람에게 응답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습관화된 관념을 따랐을 뿐입니다.
후배들과 같은 길을 걷고 계신 분들, 그리고 국민들께서 진정한 봉사정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종인 기자  safe@119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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