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계 현
인하대교수, GIS전공,
한국공간정보시스템학회장

새 정부가 주창하는 활기찬 시장경제를 위한 비즈니스 플랜들리 정부도 중요하지만 재난에서 자유로운(disaster-free) 정부가 더욱 절실한 시기이다.


재난상황실 운영 안해 정보 소통 부재
공무원 재난관리기강 확립과 제도개선 시급

국가의 재난 대처를 위하여 행자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산하에는 재난종합상황실이 있고 전국 지자체에도 182개의 재난상황실이 있다.

재난상황실이 없는 지자체는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서둘러 재난상황실을 꾸미는 중이며, 32개의 공공기관도 재난상황실을 운영하는 실정이다.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에는 정부기관은 물론 주요 공공기관을 재난책임기관으로 분류하여 재난상황실의 운영과 함께 재난정보를 공유할 것을 명시하였다.

이렇게 재난상황실을 운영하는 이유는 당연히 재난 발생 시 신속한 현장상황 파악과 인원과 장비 지원 등을 위한 기관간 의사소통, 그리고 지휘체계의 확립이다. 따라서 상황실 운영에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것은 통신망을 이용한 재난현장과 상황실 간의 실시간 정보 소통이다.
이러한 정보소통의 중요성 때문에 기존 통신망을 이용한 실시간 정보 소통이 가능함에도 소방방재청은 300억을 들여 유사시 무선통신망 구축도 추진 중이다.

이번 숭례문 화재는 화재 발생 10분도 안 되어 소방차가 도착했으나, 국보 문화재의 화재 진압방식을 놓고 시간을 끈 것이 결국 완전소실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문화재청 실무자와 화재 발생 1시간이 넘어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시간이 갈수록 재난 대응 표준매뉴얼에 입각한 대응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만일 제주도의 국보 문화재에 화재가 발생하면 문화재청 실무자가 비행기를 타고 현장에 가야만 의사소통이 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문화재청의 위치가 어디든 평소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에 입각하여 재난상황실을 운영하고 통신망을 이용한 화상정보를 포함한 제반 재난정보를 실시간으로 현장과 소방방재청, 경찰청 등과 공유하기 위한 모의 훈련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이번 화재의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다.

안이한 재난 인식으로 국민의 혈세를 들여 구축한 통신망도, 재난상황실도 모두 무용지물이 돼버린 것이다. 평소 공직자의 재난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대목이다. 하기야 작년 5월 효종대왕릉의 재실에서 문화재청장이 점심을 한답시고 가스통에 버너까지 동원한 것을 보면 평소 문화재청의 재난 인식 수준이 가름된다.

새 정부는 시급히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의 재난상황실 운영이 제대로 되는지 점검해야 한다. 일부 조직의 상황실은 심지어 창고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여 실제 상황 발생 시 제 구실은 찾기가 힘들다. 이와 함께 모의 훈련을 통하여 유사시 기관 간 실시간 통신망과 화상정보 등의 공유가 가능한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국가와 공공기관에 비치된 재난관련 매뉴얼도 마지못해 ‘감사 대비용’ 매뉴얼로 기관의 업무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획일적 내용으로, 유사시 무용지물이다. 서둘러 업무와 관련된 재난에 적합한 예방, 대비, 대응, 복구를 위한 지침서를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정부 차원의 조직 개선도 고려되어야 한다. 행정안전부는 기존 행자부 조직에 안전관리 기능을 강화한 것이라 하나 실제 소방방재청의 기능 강화는 찾기 힘들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재난발생의 긴박한 상황에서 동일한 ‘청’ 단위 조직 간에 신속한 대처나 의사소통을 위한 지휘체계의 확립은 불가능하다. 소방방재청을 국토안보부와 같은 ‘부’ 단위로 통합·격상하여 재난 발생 시 일사분란한 지휘체계를 갖도록 제도적 개선도 시급하다.

새 정부가 주창하는 활기찬 시장경제를 위한 비즈니스 플랜들리 정부도 중요하지만 재난에서 자유로운(disaster-free) 정부가 더욱 절실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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