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못 믿을 화재경보

“따르르릉!”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대림역 환승통로에서 울린 화재경보음에 시민들이 어리둥절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경보음은 여전히 귀청을 때리고 있지만 놀라서 대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몇 분이 지났을까? 경보음이 멈추고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역무원은 방금 울린 경보기의 고장으로 인해 오작동 된 것이니 동요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한다.

여기저기서 시민들의 술렁이는 소리가 들린다.“거봐, 내가 불난거 아니라고 했잖아”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지만…지난 1월 16일 오후 6시 경 대구지하철 유일의 1, 2호선 환승역인 반월당역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백운주 씨는 “역사 내부에서 10초가량 화재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전광판에도 ‘역사 내 화재발생’, ‘화재경보가 울렸습니다. 대피하세요’라는 문구가 나와 많이 놀랐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확인 결과 화재경보기가 오작동된 것으로 밝혀졌고 역무원은 “기계 오작동으로 경보기가 울렸으니 안심하고 지하철을 이용해도 된다”는 안내방송을 내보냈다.대구지하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화재경보기 오작동으로 운행 중이던 열차가 임시정차한 경우만 5차례였다고 한다.

양치기소년으로 전락한 화재경보음화재경보기의 잦은 오작동으로 인해 시민들이 경보음에 둔감해지고 있다. 주변에서 화재경보음이 울리면 화재가 발생했다는 생각보다 ‘경보기가 또 고장인가’라는 생각을 먼저 갖게 된다.

화재경보음에 대피로를 찾는 고민보다 화재경보기의 고장여부를 판단하는게 우선이 돼버린 셈이다.모두가 잠들어있는 이른 새벽 시간,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경보음이 울렸다.

모두 잠들어있던 시간에 울렸던 터라 대피하는 사람들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을 법한 상황이지만 동요는커녕 밖으로 나와 확인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화재경보기의 오작동이려니 싶어 못들은 체하고 잠을 청한 것이다.

이날의 사건(?)은 당시 아파트에 살고 있던 경찰관이 국정브리핑 사이트에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자신이 직접 화재경보기함을 임의로 열고 비상벨과 연결된 선을 강제로 뽑아 경보음을 멈췄다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해 알려졌다.이와 같은 오작동 사례는 학교, 대형 할인매장, 주요 관공서, 아파트 등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화재경보기는 이제 ‘양치기소년’으로 전락한 것이다.
관리인이 임의로 경보기 조작지난 여수출입국사무소 화재참사를 기억해보자. 화재당시 화재경보기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큰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사고당시 화재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평소에는 수시로 울려대던 화재경보기가 정작 화재가 발생할 때는 울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연유를 살펴보면 고개가 끄떡여진다.화재가 발생하기 3일 전인 8일, 화재경보기의 오작동 사고가 있었던 것이다.

사무소측은 화재경보기가 이유 없이 울리자 소방점검업체 A사에 점검을 의뢰했다고 한다. 하지만 A사가 점검을 위해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경보음은 이미 멈춰있었다고 한다.

사무소 관계자들이 경보음을 멈추게 하는 ‘주경종’과 ‘지구경종’ 버튼을 눌러놓은 것이다. A사는 “점검결과 화재경보기의 기능상 이상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오작동 가능성이 있어 오작동된 감지기를 찾아 회로를 교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무소측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화재참사가 발생한 11일에도 경종버튼이 눌린 상태로 발견됐다. 그 사이 또다시 오작동이 발생해 사무소 측이 임의로 경보음을 멈춰놓았던 것이다.

절반 이상이 경보음 꺼놔

프라임방재㈜ 소방점검사업팀 김재한 과장은 “점검을 하다보면 경종버튼을 임의로 눌러놓은 건물이 절반이상”이라며 “경종버튼을 눌러놓으면 화재사실을 알리는 경보음이 울리지 않아 감지기가 화재를 감지하더라도 소리로는 경보를 울리지 않기 때문에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전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단지 내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하면 마땅한 조치법을 몰라 경보작동 전원을 내려놓는다"고 말했다.이에 김 과장은 “오작동을 멈추려고 경보기 전체의 전원을 꺼놓으면 경종뿐만 아니라 감지기까지 작동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된다”며 “이는 실제로 화재가 발생해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안전불감증, 더 이상은 안된다화재경보기의 오작동은 보통 접촉 불량이나 순간적인 온도 증가, 혹은 먼지가 많이 끼일 경우, 그리고 감지기 주변에서의 흡연 등에 의해 일어난다. 오작동되는 감지기를 보면 대부분 노후화된 장비인 경우가 많은데 가장 좋은 예방법은 감지기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주는 것이다. 화재경보기의 수명은 일반적으로 10~15년 정도이다.

또한 감지기가 오작동 했을 때에는 바로 교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먼지를 줄이고 실내에서의 흡연을 자제하는 것도 오작동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이다.또한 화재경보기가 오작동 했을 경우 곧바로 소방점검업체에 의뢰해 점검을 받아야 한다.

사용자가 임의로 경종버튼을 눌러놓거나 경보기의 전원을 꺼놓으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인천의 한 경찰관의 이야기처럼 방화관리자가 아닌 사람이 임의로 선을 뽑는 등의 조치는 다른 사람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잦은 거짓말 때문에 정작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양치기소년은 마을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양들을 잃었다.

화재경보기의 울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현실은 양치기소년 이야기의 그것과 흡사하다. 더 이상 ‘양치기소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기적인 점검과 교체, 그리고 방화담당자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전문가 인터뷰
프라임방재㈜ 소방점검사업팀 김 재 한 과장
Q.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하는 데에는 어떤 원인들이 있는가?
A.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하는 데에는 각 감지기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일정온도를 감지하는 정온식감지기의 경우는 주로 주방에서 음식을 끓이다 뚜껑을 여는 순간 수증기가 감지기로 유입돼 동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온도차를 감지하는 차동식감지기는 사무실 등에서 히터 바람이 나오는 방향이 감지기를 향하게 되면 온도차가 급격히 변화해 작동되곤 합니다.
연기감지기의 경우는 먼지에 의해 작동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감지기가 오래되면 먼지가 쌓여 오작동하게 됩니다. 또한 계단이나 복도 등에서 흡연을 하는 경우가 감지되는 경우도 잦습니다.

Q. 오작동 방지대책으로는 어떤 방법이 있는가?
A. 무엇보다 감지기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감지기의 경우는 오동작 했을 때 바로 교체하는게 일반적인데, 화재감지기는 10~15년 정도면 수명이 다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내구연한’이 최근에 법으로 제정되어 주기적인 교체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Q. 오작동된 화재경보기를 임시로 멈춰둔 채 방치된 시설이 실제로 많이 있는지?
A. 실제로 소방점검을 하다보면 절반이상이 경종버튼을 눌러놓은 상태로 방치돼 있습니다. 심한 곳은 아예 경보기 전체의 전원을 꺼놓은 곳도 있을 정도입니다. 전원을 꺼놓으면 실제로 화재가 발생해도 이를 감지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경종버튼만 눌러놓아도 감지기가 화재를 감지하더라도 소리로는 경보를 울리지 않기 때문에 화재사실을 곧바로 인지하지 못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Q. 화재경보기 점검담당자로서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방화책임자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방화책임자는 건물에 임대해 들어오는 업주에게 유의사항을 잘 전달하고 수시로 점검을 실시해야 합니다.겨울철에 온풍기 같은 난방기구를 설치할 때에는 화재경보기의 위치를 고려해야 하는데, 바람의 방향이 감지기 쪽을 향하게 되면 온도의 급상승으로 인해 오작동되는 경우가 잦습니다.추운날씨에 히터를 갑자기 세게 트는 것도 삼가야 합니다. 그리고 경보기가 오작동하면 임의로 경보기를 끄지 말고 반드시 소방점검업체에 의뢰해 점검을 받고 교체해야 합니다

 

박상권 기자  safe@119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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